염화칼슘

염화칼슘의 부작용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선출직 지방자치단체장들에게 도로제설이 민심을 좌우하는 중요한 이슈가 되면서 유권자들에 대한 인기유지의 수단으로서 차량부식, 도로손상, 건물손상, 하천오염, 가로수 고사 등 각종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뒷전이고 막대한 양의 염화칼슘이 전 국토에 살포되고 있다.

과거 동양제철화학(OCI)에서 생산하는 국산 염화칼슘만으로 국내 수요를 충족할 때도 우리나라 도로에서 차량의 통행에는 문제가 없었다. 어느 날부터 눈이 내려도 길이 미끄러우면 안되고 즉각적인 제설이 되지 않는 모든 원인이 지자체 공무원들의 잘못으로 돌려지면서부터 국내산 염화칼슘이 부족하게 되었고, 그 부족분을 중국산 염화칼슘과 염화나트륨으로 대체하면서 저질 중국제품의 사용량이 급속히 증가되었다. 중국산 염화칼슘의 순도는 72~74%이다. 나머지는 수분 및 불순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불순물들이 살포되었을때 환경에 미치는 피해에 대하여 제대로 거론된 적이 거의 없다.

따라서 염화칼슘의 대량살포가 끼치는 2차적인 환경적 경제적 피해에 대해서 국내 환경단체에서 조사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 까 한다. 도로의 횟집 앞에 있는 가로수가 고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수족관 염수가 끼치는 피해인데 염수의 농도는 약 5% 인것을 생각해 보면 고순도의 염화물이 살포되었을 때 가로수 등이 받는 피해와 콘크리트 구조물의 부식현상 등 심각한 후처리 비용이 소모된다.

조달청에서는 2013년부터 염화칼슘, 염화나트륨을 구매하지 않는 다는 방침을 결정하고 언론에 보도하였다. 간단한 내용 같지만 관련업체 및 지방자치단체 등의 반대를 생각해본다면 용기있는 결단이다. 항상 의문이 있었다. 관공서에서 앞장서서 염화칼슘 추방에 노력하는데 왜 환경단체는 왜 염화칼슘에 관대할까! 전문성의 부족이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조금만 지식을 쌓으면 염화칼슘의 폐해를 쉽게 알 수 있다. 환경단체들이 자기 지역 지자체의 염화칼슘 사용량을 파악이나 해 보았으면 하고 희망한다.

제주도에서도 염화칼슘을 대량 구매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청정제주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청정제주가 한라산에 염화칼슘을 사용하면 염화칼슘을 먹은 삼다수는 청정수일까?


▲ 중국산 수입염화칼슘이 야적창고에 산더미 처럼 쌓여있다. 저런 톤백(1톤)에 담겨진 염화칼슘 만개 이상이 우리국토에 뿌려지고 있다.

 

액상친환경제설제

친환경제설제의 형상은 고체상태와 액체상태의 제품으로 대별되고 액체상태인 액상친환경제설제는 반응시간이 빠르고 균일한 성능을 보이는 등 많은 장점이 있지만 대형 용기의 필요, 보관의 어려움, 소량 살포의 어려움, 전용차량 또는 살포기의 필요 등 해결해야 할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을 극복한다면 충분한 이점을 가지고 있는 제품이다. 시장 형성을 위하여 국내 개발업체들의 상생을 위한 혜안이 필요하다.


▲ 액상제설제 보관 탱크


고상친환경제설제

조달청의 강력한 친환경제설제 사용권장 및 염화칼슘 사용을 억제하는 행정방향이 주효하여 2012년 겨울은 친환경제설제의 사용량이 많이 증가하였다. 그러나 중국에서 만들어진 조악한 형상의 친환경제설제의 유입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고 국산보다는 저가이어서 그 성능은 별개로 하더라도 판매 비율이 매우 높아졌다. 중국산 제품을 보면 과연 이런제품이 어떻게 친환경 인증을 받았을까 하고 의문시 되는 제품들이 난립되고 있는데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국내 업체들이 고사당할 수 도 있다. 정부에서 국내업체들을 고사시키는 악역을 할 수 도 있다는 두려움이 생긴다.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국산 제품을 애용해주는 애정과 국내 업체들의 원가절감을 위한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향후 대량생산과 계획생산이 이루어진다면 세계 최고수준의 친환경제설제를 최저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물론 우리도 공부하고 연구해서 합법적인 대책을 세울 의무가 있다.


▲ 국산 친환경제설제


근시안적인 염화칼슘의 사용

지방자치단체에서 친환경제설제가 고가이므로 염화칼슘을 사용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지속적으로 염화칼슘을 사용한다. 지자체 주민들에게 자치단체장인 중금속을 공급하며, 하천에도 오염물질을 뿌려대고 있는 것이다. 이정도의 정책능력이라면 심각한 환경적 뇌사 상태이다. 논리적 모순을 지적해보면 염화칼슘은 가격 변동폭이 크지만 보통 kg당 300원 정도이고 친환경제설제는 kg당 400원대이다. 3류 언론에서는 염화칼슘이 최저로 형성되었을때의 가격과 친환경제설제중 최고가격을 비교하여 몇배의 차이가 난다는 식으로 대중을 호도하고 있다. 염화칼슘의 도로파괴, 포토홀현상에 의한 아스팔트 패임현상, 가로수고사, 하천오염, 불순물 분진 등 2차적 피해를 고려해본다면 실질적으로 염화칼슘의 가격은 kg당 1,000원이 넘을 수 있고 나와 가족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잠재적 살인 인자로 작용하는 것이다. 당장의 눈속임 행정보다는 미래의 이익을 바라보아야 하고, 환경인식이 부족한 지자체가 있다면 주민들이 경고해야 한다. 

친환경제설제의 사용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화학제품인 제설제의 지나친 남용은 결국 아니사용한 것만 못한 것은 당연지사이다. 염화칼슘보다는 친환경제설제의 사용이 차선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친환경 제설은 바로  물리적이 제설이다.

                         


            기다리고 즐기고 직접 치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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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은 옥천

대전을 떠나서 살 인연이 아닌지 직장도 대전에서 근무하고 있다. 조달청 직원분들이 고향을 물어보면 무심코 대전이라고 답하지만 추억이 필요한 질문에는 옥천이라고 답한다. 어머니의 고향 옥천은 어린시절 좋은 기억들만 있다. 초등학교 졸업 후 대전에 살면서 더 이상 추억이 밀려올 여지가 없지만 아련히 좋았던 기억이 많다. 그때 친구들과는 연락이 거의 되지 않는다. 

10여년전 인터넷 동창사이트가 대한민국을 들어놓았다가 내려놀때 소식이 궁금했던 특별한 인연의 초등학교 친구 주남종에게서 연락이 왔다. 강남역에서 만나고 그 후로도 소식을 전하곤 했는데 홀연히 사라지고는 이젠 친구들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몇년 전에 힘든 일이 많았을 때 옥천에서 살던 집을 찾아가 보았다. 격변기 80년 삼양초 옆에 아버지가 지었던 벽돌집은 누군가가 살고 있었는데 기초를 부실하게 하여 지반침하가 되는지 피사의 사탑처럼 약간 기울었다. 당시 대문이 30년이 지나도록 그대로 있는데 집이 너무 작다. 

내친김에 70년대 중반에 지었던 집에도 가 보았는데 산중턱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작은 언덕정도 였고 오래된 집이 너무 깨끗했다. 문패를 보니까 당시에 아버지에게 집을 인수하신 분이 지금도 살고 계신 것 같았다. 부모님이 지금의 나보다 적은 나이에 흙벽돌을 직접 찍어서 지은 집을 너무 잘 보존해 주셔서 고마웠다. 당시 집앞에 봉분이 있어서 그 위에서 뛰어 놀았는데 평지가 되었고, 집 근처 공동묘지는 식품공장이 되었고 그 공동묘지에서 무서운 줄 모르고 잘 놀았다.


옥천 구읍

2012년 여름 미국에서 박유미 여사님이 오셨을 때 원자력연구원 이용희실장님의 장계리 주택 건축현장을 구경하고 오는 길에 옥천 구읍에서 식사를 했다. 옥천읍은 신읍과 구읍으로 나누어 진다. 

1900년경 철도역 건설을 반대한 구읍주민들덕에 1905년 신읍에 옥천역이 생겼고 이후 구읍은 군이라는 작은 행정구역내에서도 발전이라는 세속의 범주에서 벗어나 생활의 큰 변화가 없었다. 덕분에 일제시대이전의 대부분의 건축물이 구읍에 있고, 옛스러운 멋도 있다.

구읍에는 초대 공화당 의장이었던 정구영 고택, 애국지사 김규흥 선생 고택, 김기태 고택, 복원된 육영수여사 생가, 옥천의 자랑인 정지용 시인의 생가(복원), 한옥으로 지어진 옥천여중 교무실, 죽향초등학교 등등이 남아있다. 

그러나 옥천 구읍에 가면 민망스러운 곳이 바로 시멘트로 발라놓은 실개천이다. 정지용이라는 큰 문화자산을 가진 옥천군에서 억지스럽게 생가복원을 하였지만 지용이 읆조린 실개천은 지금은 그냥 개천이다. 잡지에서 구읍의 실개천을 정지용시인과 억지 연결하여 미화하는 기사를 보았는데 지금의 사방을 시멘트로 발라놓은 개천을 정시인이 보았다면 하고 생각하니 참 민망하다. 




옥천 구읍에서 마당 넓은 집이라는 이름으로 식당이 되어버린 구옥의 초입에서 예전 기억이 났다. 이곳은 80년대 후반까지는 분명히 부친 친구분이신 백선생님 집이었다.  

대학 1,2학년 때도 자주 들러서 인사했던 내겐 좋았던 기억의 장소이다. 어느 날인가 오른쪽에 있던 사랑방에서 곤하게 낮잠을 잤던 기억이 남아있는데, 이 곳이 식당으로 변한 모습을 보니 착잡하기도 하고 옛 기억이 아쉽기도 했다.

이 집은 일제강점기에 옥천여자중학교(옥천여자전수학교) 교무실로 사용되었다. 한옥이 교무실이라고 하니 지금의 기준으로는 어색하지만 한옥이 학교로 사용된 귀중한 자료이다. 고 육영수여사가 옥천여중에서 짧지만 가정 교사생활을 하셨는데 시기적으로 보면 이 건물에서 근무하셨을 것으로 예상된다.


구읍과 인연이 있는 유명인사가 많다. 하계리 출신 정지용 시인, 초대 공화당 의장이신 정구영 변호사, 육영수 여사, 가수 김현식 등이다. 김현식은 서울사람이지만 모친이 옥천출신이시고 초등학교때 옥천에서 살았다고 한다. 김현식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타리를 보면 서울 삼청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기 전까지 잠시 옥천 구읍 죽향초등학교를 다녔다.

김현식이 외로움으로 방황할 때 누나에게 옥천에 살 던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회고하곤 했다고 하는데 위에 설명한 식당으로 사용되는 옥천여중 교무실이 김현식이 옥천에서 살던 집으로 소개되었다. 옥천은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추억을 남기는 진한 매력이 있다.


▲ 옥천죽향초등학교 보존건물


정지용-육영수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옥천 죽향초등학교 구 교사이다. 1909년 사립학교로 개교한 창명학교가 1910년 옥천공립보통학교로 1941년 죽향국민학교로 바뀐 뒤 100년의 역사를 지니며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육영수여사, 정지용시인이 동문이다. 1936년 지어진 죽향공립보통학교 교사는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 죽향초등학교 교정 오른쪽에 남았다. 지상 1층 규모의 일식 목조 건물에는 긴 복도에 3개 교실이 들어서 있다. 불과 15년 전까지 학생들이 수업을 받았는데 현재는 교육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초등학교 운동장 한편에는 육영수여사 휘호탑, 정지용 시비, 죽향리사지삼층석탑이 서 있다. 


                  ▲ 육영수 여사 생가

초등학교때 육영수 여사 생가로 소풍을 갔었다. 70년대 10살 어린이 눈에는 집에 연못이 있는 가장 커 보이던 집이었다. 80년대 육여사 생가가 폐가가 되어서 몇몇 지역분들이 복원운동을 추진하기도 했는데 복잡한 사정으로 추진되지 못했었다. 다행히 최근에 복원된 생가는 예전같은 세월감은 없지만 멋진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준다. 옥천군에서 문화적 자산을 잘 활용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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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국화옆에서

2012. 12. 30. 16:50

 

국화옆에서

어릴 때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국화를 좋아하셨는지 집안에 투박한 질화분에 담겨진 국화가 많았다. 

학교에서는 연세 지긋한 선생님들이 철사를 이용하여 멋지게 조형미를 만들어낸 국화화분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소박하지만 풍성한 꽃봉우리가 시골학교와 잘 어울렸고 장기간 개화되어서 관리가 편했던 장점이 부친의 꽃이 된 것 같다.

청사플라워에 들렀다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국화를 보고 사무실에 한다발 꽂아 놓았다.

아이러니하지만 여직원들은 그다지 꽃을 좋아하지 않는다.

직장협의회에서 1년간 회원들 집으로 생일꽃바구니를 보내주는 행사를 했었는데, 의외로 보기는 좋은데 관리가 힘들다고 말을 하며 아까워하는 여직원들이 많았다. 상품권으로 받았으면 하는 분들도 많았고...

 ‘서러워라 나이들어 간다는 것이’

감성마저 잃어버리면 인생이 너무 서글프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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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롤

어린 범진이가 레온타인 프라이스의 캐롤을 듣고 있으면 따라서 부른다. 

겨울이면 즐겨 듣게되는 캐롤음반 3개를 골라보았는데 예수님 팔아서 이익 추구하는 상술로 제작했다기 보다는 노래를 듣고 있으면 예수탄생을 감사하게 되는 아트로 승화된 캐롤... 

1. 레온타인 프라이스, 2. 조안 서덜랜드, 3. 에디 히긴스 트리오


레온타인 프라이스과 카라안의 베를린필이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리사이틀


 


레온타인 프라이스의 전성기시절 카라안과 함께한 크리스마스 리사이틀 앨범이다. 격조있고 촉촉한 음색을 느낄 수 있다. 크리스마스가 아니어도 항상 들어도 차분한 기분을 얻는데 좋은 작품이 어떤 것이지를 알 수 있다.


조안 서덜랜드표 옥구슬 크리스마스 캐롤


옥구르는 소리의 서덜랜드표 캐롤. 호감형 외모가 아니지만 즐거운 목소리다.


에디 히긴스 트리오의 재즈 크리스마스 캐롤



히긴스가 작고하여 다시는 이런 연주가 들려질 수 없지만 최고의 재즈크리스마스 앨범이다.


※ 레온타인 프라이스 앨범을 직장 아줌마 동료들에게 선물했는데 관심이 없다.  



가자 서해안으로

조달청 낚시동호회는 산악회에 함께 조달청내에서 40년 이상의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사내동아리이다. 그런데 어지하랴 날로 번창하는 산악회와는 반대로 신입직원들은 전통적인 낚시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 동아리의 세가 많이 축소되었다. 

낚시동아리도 정적인 민물낚시에만 집중하지 않고 회원 및 가족들이 즐기는 낙시를 위하여 서해안으로 가을 쭈꾸미낚시를 출조하였다. 민물에서 바다로 이동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이라서 반대하는 회원들은 없었는데 의외로 멀미로 심한 고생을 한 기억을 가지신 분들은 참석을 하지 못해서 유감이었다.

서천앞바다에서 안면도 근처까지 이동하는 서해안 쭈꾸미로드에 모두들 기대가 많았다. 쭈꾸미낚시는 낚시방법이 간단하다고 고참 선배들이 연신 설명하지만 내심 걱정들이 있다. 

그런데 이날 바다 위에 있는 쭈꾸미낚시 배만 100척이 넘는다. 한 배에 10명씩이면 약 1,000명이 낚시를 하고 있었고 1인 50마리 잡으면 약 5만마리가 잡혔는데 아무리 자원이 많아도 이렇게 잡아도 되는 걸까!


무려 120마리를 잡다

고유가를 이유로 대부분 낚시배를 운영하는 선장들이 이동을 많이 하지 않고 근해에서만 출조하여 불만이 많다. 

낚시배 임차를 서천에서 사진활동을 하고있는 강선선배에게 부탁했다. 

선장님이 강선선배에게 신세를 많이 졌다고 하시며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다니셨다. 

나는 처음해보는 쭈꾸미낚시이고 경질로드여서 조금 걱정은 됐는데 곧 감각이 느껴졌다. 에기에 올라 타고 있는 귀여운 쭈꾸미들을 열심히 잡았고 옆자리의 양철인이 같이 잡아줘서 120마리를 잡았다. 라면에 넣어보니 훌륭한 맛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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