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대성' 이야기


초등학교때부터 야구를 좋아했다.

최동원, 김봉연, 장효조, 조계현, 선우대영, 이해창, 김일권,  ...

 

대전시 동구 신흥동에 '충남중학교'가 있다.


82년 충남중학교에 야구부가 있었고 운동장에서는 매일 유니폼을 입은 학생선수들이 야구를 했고 겨울에는 학교 뒷편에 만든 비닐하우스 연습장에서 뛰고 굴렀다. (가끔 이 비닐하우스에서 중학생이 PT체조를 했다.)


대전은 충남중과 한밭중에 중학야구부가 있었고, 대부분 신흥초 - 충남중 - 대전고 또는 유천초 - 한밭중 - 대전고 라는 두 루트를 통해서 야구시스템이 이루어져 있다.

(김광림, 한용덕, 정민철, 최만호, 마일영, 송광민, 윤규진이 충남중, 한대화, 정현석은 한밭중 출신이다.)


구대성은 69년생인데 중학교는 1년 후배가 된다. 

초등학교를 7년 다녔다는데,  중1때부터 유명했고 공던지던 모습도 그리고 야구방망이로 맞는 장면을 본 기억도 난다.


84년 제주도에서 전국소년체전이 열렸고 '충남중 야구부'가 우승 했다. 

서대전역 광장에서 열린 환영식에 참석하라고 해서 모두 모여서 역으로 갔을 때 같은 반이었던 포수 민오삼, 롯데에서 투수로 활약했던 가득염, 중2 구대성 등등이 있었다.


민오삼은 한화이글스에 입단했다는 기사를 보았었는데 사라졌고, 가득염은 가늘고 길게 선수생활을 하며 유명해졌고 구대성은 최고의 투수가 됐다.


한화의 마지막 전성기시절 구대성은 대성불패로 불렸다. 


조달청 자재구매과 김영철 과장이 계실 때 내가 바람을 넣어서 자재구매과 체육행사를 이글스 야구관람으로 대체했다. 

아들 범진이와 같이 갔었던 그 경기에서 상대는 당시 최강이었던 삼성이었고 구대성은 대성불패를 외치는 팬들의 마음을 물리치고 장렬히 패전을 했다.


몇 년전 관평동 대덕테크노 아파트 지인집에 갔을 때이다. 지인은 앞집에 운동선수가 사는 것 같은데 누군지는 모른다고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사람은 야구유니폼을 입은 구대성과 부인이었다. 


얼마 뒤 구대성은 호주로 떠났고 아마도 자식 교육때문이 아닐 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구대성을 보면 중학생 구대성도 보이지만 그 시절

나도 그리고 친구들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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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거의 30년 전이니 아둔한 머리에 기억이 흐릿하지만 

80년대 중반 부산지역  대학출신 가수들의 등장은 놀라웠다. 

동아대 이상우, 동의대 높은음자리, 바다새, 경성대 전유나까지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를 통해 배출된 부산출신 가수들의 숫자도 많았지만

바다냄새 나는 노래들도 다 좋았던 것 같다.

사투리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쩔쩔매던 그 시절 부산출신 가수들이 이젠 50을 바라보고 있다.

이분들 노래를 쉽게 접할 수 있기도 하고 영상으로도 볼 수 있어서 반갑다. 


대전을 대표하는 가수는 충남대 출신 신승훈이다. 

목원대 음대 출신의 '이재성'은 촛불잔치로 큰 인기를 얻었고 좋은 노래를 많이 만들었다.

특유의 개성있고 시원한 창법을 가지고 있어서 그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재능에 비해서 운이 없던 것 같다.


자양동에 살던 친구들을 통해서 신승훈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대학에서 보이는 80년대 후반 신승훈은

이미 대전지역의 유명스타였다.


신승훈은 당시의 가수 등용문인 가요제 출신이 아니지만 

80년대 이미 대전의 유명 아마추어 가수로서 그 명성을 날리고 있었고 

80년대 대전의 은행동, 대흥동이 번화가인 시절에 라이브공연을 하는 없소들이 많아서 

지역의 대학축제, 라이브공연장에서 쉽게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88년에 은행동에 있던 게르만호프에서 부활의 희야를 부르며 공연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당시에 대전지역 대학 축제는 훗날 충남대 개그동아리를 창설한 명사회자 윤환용의 사회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고

거의 졸도수준의 웃음을 선사하는 사회자의 진행속에 마지막에 등장하는 신승훈이 부르는 '희야'와 '라밤바'는

축제의 하이라이트 였다. 


대전의 한남대학교에는 통기타 동아리 샤프랫이 있었고, 샤프랫 출신 '김지연' 은 한남대 국어교육과 87학번 이었던 것 같다.

몇년전에 여유만만이라는 프로에 나온 것을 보았는데 나이가 들어서 인지 통통해 졌다.

그녀를 처음 본 기억은 89년 충남대 공과대학 축제때였다. 어설픈게 기획한 한심했다 공과대학 축제 (당시에는 거의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이 났다)의 마지막 행사 공연장인 공대 2호관 가설무대에 등장한 초대가수가 김지연 이었고 그녀는 예뻤다.


약간 서늘해진 저녁날씨였다. 김지연은 자신의 최대 히트곡이 되는 '찬바람이 불면' 을 감칠맛 나는 음색으로 노래했고, TV드라마 주제곡으로 나온다고 했는데 그 뒤 최수종이 주연이었던 텔레비젼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의 주제곡으로 사용되면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음반이 나오기 전이었고 몇달 뒤 군입대를 하면서 LP를 구하지 못했는데, 결국 올해 중고 LP사이트에서 한장 구매하고 턴테이블에 올려보았다.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생각은 다들 어렸던 그 시절...

 

배철수의 7080에 출연한 김지연을 볼 수 있었는데 살이 오른 모습에 세월이 흘러간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외모는 옛모습이 남아있지만 노래는 예전보다 못한 것 같았다.

새로운 음반과 지속적인 음악활동을 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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