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랑집

 

  

승냥이가 새끼를 치는 전에는 쇠메 든 도적이 났다는 가즈랑고개


가즈랑집은 고개 밑의

산 너머 마을서 도야지를 잃는 밤 짐승을 쫓는 깽제미 소리가 무서웁게 들려오는 집

닭 개 즘생을 못 놓는

멧도야지와 이웃사촌을 지나는 집


예순이 넘은 아들 없는 가즈랑집 할머니는 중같이 정해서 할머니가 마을을 가면 긴 담뱃대에 독하다는 막써레기를 몇 대라도 붙이라고 하며


간밤에 섬돌 아래 승냥이가 왔었다는 이야기

어느 메 산골에선간 곰이 아이를 본다는 이야기


나는 돌나물김치에 백설기를 먹으며

옛말의 구신집에 있는 듯이

가즈랑집 할머니

내가 날 때 죽은 누이도 날 때

무명필에 이름을 써서 백지 달아서 구신간시렁의 당즈깨에 넣어 대감님께 수영을 들였다는 가즈랑집 할머니

언제나 병을 앓을 때면

신장님 단련이라고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

구신의 딸이라고 생각하면 슬퍼졌다


토끼도 살이 오른다는 때 아르대즘퍼리에서 제비꼬리 마타리 쇠조지 가지취 고비 고사리 

두릅순 회순 산나물을 하는 가즈랑집 할머니를 따르며,

나는 벌써 달디단 물구지우림 둥굴레우림을 생각하고

아직 멀은 도토리묵 도토리범벅까지도 그리워한다.


뒤울안 살구나무 아래서 광살구를 찾다가

살구벼락을 맞고 울다가 웃는 나를 보고

밑구멍에 털이 몇 자나 났나 보자고 한 것은 가즈랑집 할머니다

찰복숭아를 먹다가 씨를 삼키고 죽는 것만 같아 하루종일 놀지도 못하고 밥도 안 먹은 것도

 가즈랑집에 마을을 가서

당세 먹은 강아지같이 좋아라고 집오래를 설레다가였다.


시집 사슴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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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燒酒를 마신다

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쟈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지용과 백석

옥천에서 유년시절 기억이 깊어서 일까! 

옥천출신 정지용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향토색이 넘치는 그의 시구가 좋다. 그가 구사하는 향토적 언어 속에 있는 장소들이 시간을 흘러 변해갔어도 나의 유년시절과 일부라도 중첩되지 않을 까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80년대 말 지용의 시가 해금되었을 때 옥천에서 지용제를 준비하시던 부친 친구분의 설명을 통해서 처음 지용을 알게되었는데 이젠 옥천사람들의 문화적 자긍심이 되었다.

지용과 대비되는 시인은 시인들이 좋아하는 시인이라고 불리는 평안도 정주출신 백석(백기행)이다. 사슴처럼 긴 목과 오목조목한 귀공자 같은 얼굴의 식민지 시인 백석을 돌이켜볼때 꼭 기억해야할 다른 한 사람은 백석이 사랑한 여인 나타샤 김영한(자야)이다.

백석에게는 모범생같은 지용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묘한 센티멘탈이 있다. 조각 같은 얼굴과 뛰어난 文材를 가진 영어교사 백석에게서 나타샤와의 사랑은 그의 시속으로 더 빠져들게 한다. 성북동 대원각이 백석의 시한줄만 못하다고 하신 나타샤(북구의 소녀)의 인터뷰 기사가 있다. 

넘 볼 수 없는 눈물나는 사랑이다.

오늘 투병중인 진곤씨 병문안을 위해 창원가는 길에 국문과 출신 김학민 박사가 낭송한 백석 싯귀에 다들 감동하셨다. 다음에 만나면 길상사와 백석과 자야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겠다.

                                                   ▲ 말년의 백석과 가족들(미소년은 어디로 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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