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s

속리산 등산

2016. 4. 10. 22:16

대덕고등학교 5기(88년 졸업) 


2016.4.9. 

대전 대덕고등학교 5기 동기들

10명이 속리산 문장대 등산에 참석했고 차량 2대로 이동했다. 

속리산은 20번은 온 것 같은데, 89년 겨울 군대 입대기념으로 부모님과 함께 문장대 천왕봉에 올라간 기억도 있다.

 

속리산을 가운데 두고 할머니 고향은 문장대 경상도인 상주시 화북면 상오리이고 할아버지는 옆쪽인 괴산 청천면 후평리라고 하니 마음이 편해지는 건 그 이유가 있겠다. 



입장권 사면서 기념사진.. 



약 3km는 평지와 같아서 편하게 간다. 




진형이는 힘이 장사..  



'천송이' 사진이 맘에 든다. 





하산 중에 쉬어간 용바위골휴게소는 편한 곳이다. 젊은 주인 부부가 열심히 손님들을 맞는다. 









가볍게 다녀왔다.

산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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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안춘문을 기억하며!

2016. 1. 25. 00:12

영화 '히말라야'는 산악인 '엄홍길'의 '휴먼원정대'가 모티브다. 

동료산악인 3명의 시신을 찾는 과정을 다룬 이 영화를 보면서 학과 선배인 87학번 '안춘문'을 기억했다.


우리에게 히말라야는 곧 네팔인 시절이 있었다.

'90년대 초반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네팔'이 아닌 다른 나라들을 통한 히말라야 등정이 시도되었다. 

경험과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중국, 파키스판 등으로 다양화된 히말라야 등정을 시도한 많은 젊은 산악인들이 사고를 당했다. 


'93년 7월 7일 충남대 공대산악회 히말라야 낭가파르밧 원정대원인 87학번 안춘문(당시 26세)은 디아미르벽 8,070m 부근에서 등반도중 실종되었다. 


지금은 경기도 양주에서 니트원단수출사업을 잘하고 있는 과동기 88학번 백철현이 당시 공대산악회장었고 더운 여름에 사고수습을 위해 정말 열심히 뛰어다녔다. 


학과에서 마주쳤던 생전의 안춘문선배는 휴학을 하고 등정비용마련을 위해 일을 하면서 등반 훈련을 했다고 한다. 시신수습을 못해서 유품으로 위령제와 장례식을 치뤘고 가묘는 공주 박정자 근처였었다.


위령제는 공대 1공관 공장동쪽 복도에서 열렸다. 

백철현의 부탁으로 위령제를 촬영했는데 당시를 기억해보면

고분자공학과 주혁종교수가 산악회 지도교수로 공대산악회원들과 함께 위령제를 주관했고 지역산악인들과 가족들이 참석했었다.  

위령제중에 안춘문선배와 베이스캠프 대장과의 마지막 교신 녹음을 들었는데, 안춘문선배는 대장의 애타는 철수명령을 알아듣지 못하는 패닉상태였고 '졸려요' 라고 계속 말을 하다가 무전이 끊겼다. 

부모님이 이미 두분 모두 작고하셨기에 당시 대전 중앙고 교사이던 안춘문선배의 형님 부부께서 안선배를 보살폈다고 들었는데 영결식장에서 슬프게 너무 슬프게 우시던 형수님 생각도 난다.


그리고 한달쯤 지났을 때이다.

여름 막바지에 학과사무실 전ㅇㅇ 조교앞으로 파키스탄에서 보낸 엽서가 도착했다. 

안춘문선배가 정상등반 전에 파기스탄에서 83학번 선배였던 학과조교에게 보낸 엽서에는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지못한 아쉬움과 미안함, 그리고 귀국 후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는 등의 내용이었는데, 학과조교는 후배의 마지막 흔적에 안타까움과 눈물이 났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 히말라야를 보면서 20년 만에 93년의 '안춘문' 기억이 났고 그를 기억해주고 싶었다.

얼마 전 만난 친구 백철현은 그 선배 기억이 나서 히말라야를 볼 수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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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청 근무하면서 가장 뿌듯한 일은 조달청공무원노동조합의 첫 발을 함께 했다는 것이다.

 







가까운 길을 너무 어렵게 돌아서 왔다. 고민할 일이 아니었는데! 









2014년 12월 13일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대전세종지역 총력대회가 서대전시민공원에서 열렸다. 대학시절 서대전사거리 근처에 살았었는데 공원에는 처음이었다. 과천에서 교육중이어서 행사준비에 어려움이 있었다. 

눈도 오고 찬바람도 매섭다. 다들 정신차리라는 하늘의 뜻으로 알았다.

박범계 의원이 지지연설을 해 주었는데 가식이 없다.




은행동 성심당에서 옆에서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가두서명을 받았다. 역시나 예상대로 시민들 반응이 시원찮다. 공적연금의 의미와 그 중요성을 알아야 할텐데 안타깝지만 대부분 관심이 없다. 어쩌면 공적연금을 알려고 해도 더러운 언론의 난봉질로 불가능한게 현실이다. 안타까운 현실을 뒤로 하고 노력하자.

 




세월호 참사 1주기다. 서대전시민공원의 1주기 행사장에 많이들 모였다. 추웠다. 마음은 더 추웠다. 법원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고교동창 '육은수'하고 같이 갔는데 함께 하면 항상 든든하다.

행사장에서 아이들 영정에 묵념을 먼저한다. 우리 아이와 비슷한 얼굴의 그 많은 아이들의 영정사진을 보면서 눈물이나서 그리고 미안해서 힘든 날이었다. 




공적연금강화 공무원교원 총궐기대회(2014.11.1)




여의도광장 2차대회 




공적연금강화를 위한 대전세종지역공대위에서 릴레이로 실시하는 1인시위, 조달청은 새누리당 대전시당사를 맡았다. 1인 시위는 별도의 시위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다.  새누리당에서 당사에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 세월호참사로 희생되신 분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라고 플랭카드를 걸었다.  과연!

 


정부대전청사 앞에서도 릴레이 시위! 올해 휴가는 노동조합 행사로 다 사용한다.




대전역에서 유인물 배포!



민주당 대전당사 점거시위가 있다. 관세청 이구영 위원장님하고 함께 했다.







정부대전청서 앞 릴레이 단식투쟁이다. 삭발하신 분들이 멋있다. 특허청 김정훈 위원장은 마치 DJ포스가 있다. 




노동조합에서 물러나고, 새롭게 구성된 노동조합에서 마련한 새누리당 민병주의원과의 간담회에 초대받았다. 김성남위원장과 임원들 잘 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민병주 의원 이분 솔직하시고 자신의 역활을 잘 알고 계신다. 좋은 결과를 기대해 본다. 정부청사내 각 청 노동조합 활동에 적극 협조하신다고 약속하셨다. 믿는다. 

'구대성' 이야기


초등학교때부터 야구를 좋아했다.

최동원, 김봉연, 장효조, 조계현, 선우대영, 이해창, 김일권,  ...

 

대전시 동구 신흥동에 '충남중학교'가 있다.


82년 충남중학교에 야구부가 있었고 운동장에서는 매일 유니폼을 입은 학생선수들이 야구를 했고 겨울에는 학교 뒷편에 만든 비닐하우스 연습장에서 뛰고 굴렀다. (가끔 이 비닐하우스에서 중학생이 PT체조를 했다.)


대전은 충남중과 한밭중에 중학야구부가 있었고, 대부분 신흥초 - 충남중 - 대전고 또는 유천초 - 한밭중 - 대전고 라는 두 루트를 통해서 야구시스템이 이루어져 있다.

(김광림, 한용덕, 정민철, 최만호, 마일영, 송광민, 윤규진이 충남중, 한대화, 정현석은 한밭중 출신이다.)


구대성은 69년생인데 중학교는 1년 후배가 된다. 

초등학교를 7년 다녔다는데,  중1때부터 유명했고 공던지던 모습도 그리고 야구방망이로 맞는 장면을 본 기억도 난다.


84년 제주도에서 전국소년체전이 열렸고 '충남중 야구부'가 우승 했다. 

서대전역 광장에서 열린 환영식에 참석하라고 해서 모두 모여서 역으로 갔을 때 같은 반이었던 포수 민오삼, 롯데에서 투수로 활약했던 가득염, 중2 구대성 등등이 있었다.


민오삼은 한화이글스에 입단했다는 기사를 보았었는데 사라졌고, 가득염은 가늘고 길게 선수생활을 하며 유명해졌고 구대성은 최고의 투수가 됐다.


한화의 마지막 전성기시절 구대성은 대성불패로 불렸다. 


조달청 자재구매과 김영철 과장이 계실 때 내가 바람을 넣어서 자재구매과 체육행사를 이글스 야구관람으로 대체했다. 

아들 범진이와 같이 갔었던 그 경기에서 상대는 당시 최강이었던 삼성이었고 구대성은 대성불패를 외치는 팬들의 마음을 물리치고 장렬히 패전을 했다.


몇 년전 관평동 대덕테크노 아파트 지인집에 갔을 때이다. 지인은 앞집에 운동선수가 사는 것 같은데 누군지는 모른다고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사람은 야구유니폼을 입은 구대성과 부인이었다. 


얼마 뒤 구대성은 호주로 떠났고 아마도 자식 교육때문이 아닐 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구대성을 보면 중학생 구대성도 보이지만 그 시절

나도 그리고 친구들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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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빈첸시오의 집


80년대 초·중반 대덕군이 편입되기 전 대전 인구가 많지 않았다.

그당시에 신흥동 충남중학교를 다녔는데 우리집은 중구 문창동 대전천변에 있었다.

맑은 물이 흐르는 대전천은 10여년 전부터이고, 당시에는 하수정화가 되지 않아서인지 악취가 진동하는 지저분한 곳이었다.


대전천변 문창시장입구에 우리 집이 있었고 그 옆으로는 소규모공장, 가구가게, 목공소, 고물상(지금도 고물상이 많다),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이 많았다. 천 건너편 동구 인동·효동에는 중화실업이라는 섬유방적공장이 있었는데 지금 인동현대아파트자리이다.


90년대 초반부터 대전의 외곽이던 둔산지구가 개발되고 유성구 반석동 등에도 대규모 주거단지가 되면서 동구와 중구는 도시 공동화 현상을 겪고 있다. 

둔산동 갤러리아백화점 주변은 공군기술교육단, 32사단, 통신학교 등 군부대가 많았고 안쪽으로 도룡동입구까지 대규모 둔산개발이 이루어지면서 대전이 중심이 바뀐 것이다. 

중구에서도 변두리였던 문창동, 부사동은 활기없는 주거지역이 되었고 그 안쪽으로 석교동, 옥계동, 호동 등은 대전의 시골마을로 전락해 버렸다. 야구장앞에 있는 문창초등학교가 한학년에 2학급으로 시골학교 수준으로 인원이 줄었다고 하니 그 많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오랜만에 가본 우리 집은 공터가 되어 시장공영주차장으로 변해있었고 그나마 반가운 것은 문창시장이 잘 정비되어 활기가 있는 모습이었다. 

 




조달청 봉사동호회에서 급식봉사활동을 하는 날이다.

회원은 아니지만 직장협의회에서 비용일부를 후원하면서 회장으로 참가했는데, 이번 주 방문지가 문창동 예전에 살던 우리 집 뒤에 있는 "성 빈첸시오의 집"이어서 더 반가웠고 매우 소극적이었던 중학교 시절 내 생각도 많이 났다.


어버이날을 맞아 급식봉사활동에 참가한 인원은 총 9명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을 찾아 뵙지는 못했지만 같은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봉사동호회에서는 떡을 준비했고 직장협의회에서는 어르신들을 위한 양말을 기증했다.




문창동은 부사동과 이어져 있다. 부사동에는 과거 공설운동장이 있었고 공설야구장은 프로야구를 볼 수 있는 한밭야구장으로 이름이 바뀌어 지금까지 이어져 온다.

운동장에서 문창초등학교 쪽으로 큰 교회 몇개와 문창동성당이 있다. 30년이 넘었지만 그 성당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고 지역사회에서 성 빈첸시오의 집을 운영하며 급식봉사를 하고 있다.

무료급식이지만 공짜는 아니다. 밥값은 100원이다. 공짜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식수인원 파악도 수월하다고 한다. 







어버이날을 기념하려고 성당측에서 닭죽을 준비하셨다. 




음식솜씨가 거의 '일류쉐프'이시다. 



성 빈체시오의 집은 자원봉사로 운영되고 있는데, 대전의 각 성당에서 어르신들이 돌아가면서 봉사활동을 하신다. 

오늘은 산성동성당 어르신들이 힘써주셨고 조달청은 그 분들을 도와드리는 서브봉사활동을 했다.

 



▶ 일단 옷부터 갈아입고... 







▶ 칼솜씨가 날렵한? 김회원 






▶ 항상 진정성으로 세상을 대하는 조달청 봉사동호회 설동완 회장(님) 







산성동성당에서 오신 원로부터 젊으신 여자분까지 모두들 열심히 일하시고 얼굴이 맑아 보인다. 







▶ 원로분께서 너무 열심히 일하셨다.  존경스럽다






▶ 잠시 망중한 






성 빈첸시오의 집에서는 매일 200~250여분의 어르신께 급식을 하고 있다.

작년까지 보문산입구에 있는 중문교회도 급식봉사를 했지만, 철수하면서 이 곳의 급식인원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 항상 일하기 전에 든든하게 밥을 먼저 먹는다.  




▶ 작년에 입사한 신입직원들과 함께.. 



▶ 봉사활동을 마치고 기념사진 



어버이날이기도 하지만 예상보다 어르신들이 많았다. 

어쩌면 식사보다는 대화를 하면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일 것 같다.  

육신의 외로움과 가난이 결합하면 세상은 너무 잔인하다. 어울리며 살아가는 그런 세상을 꿈꾸는자 다 어디에 있을까.. 

사회적 불평등이 개선되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분들이 많아 지기를 희망해본다.

난 사진촬영한다고 일을 하지 못해서 동호회원들 보기 민망하다.

오늘 한끼 식사의 가치를 절절히 느낀다.

 

고영남 감독의 작품이다.

82년 아니면 83년 TV에서 보았다.

서울에서 전학온 연이와 시골소년 석이의 우정과 사별이 충북 영동의 시골풍경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꾸며진다.

아름다운 풍경과 한국의 독특한 정취를  물씬 맛볼 수 있는데 영동에 아직 그 당시 건물들이 남아 있다고 한다.                                   

     


사춘기 시절 이 영화의 연이에 대한 기억이 좋아서 아직도 그 모습이 생생한데

어쩌면 사춘기 시절의 나를 본다고 생각했었다.

내 맘속의 추억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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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튼 동물기’는 동물에 관한 일화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한 책인데, 그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이 ‘이리왕 로보’이다. 그 줄거리는 사냥꾼들이 절대로 잡을 수 없고, 도리어 사냥꾼들을 데리고 놀 정도로 대단한 이리인 로보가 어느 날 사냥꾼에게 순순히 잡혔는데, 그것은 단지 자기의 짝인 블랑카의 안위를 위한 것이라는 ‘동물판 순애보’이다. 실제로 ‘이리왕 로보’를 읽어보면, 로보가 사냥꾼에게 잡힘으로써 로보의 블랑카에 대한 사랑이 승화된 카타르시스가 감전이 된 듯 뚜렷할 정도로 느껴진다.


여자에게 사탕발림으로 ‘나 자기를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어. 자기는 내 목숨보다 소중한 사람이야’라고 ‘자겁’을 들어가는 남자가 있을 수 있으며, 드라마나 유행가에서는 아직도 흔하다. 그러나 아직 내 나이는 충분히 젊지만, 여자를 위하여 죽는 남자를 실제로 본 적은 없다.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대형가수 윤복희씨의 ‘왜 돌아보오.’라는 노래의 가사에는 이런 것이 있다.


‘사랑한단 말을 마오. 유행가 가산줄 아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극진한 사랑이다.

미래소년 코난은 코난과 라나의 극진한 사랑이 기본 테마이다. 배경은 극성을 이루던 인류의 문명이 인간의 탐욕으로 완전히 몰락한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하이하바라는 섬으로, 여기에서 물고기를 잡는 순박한 소년 코난이 태양광에너지를 개발할 지식을 보유한 라오박사의 유일한 혈육 라나가 악당 레프카를 피하다가 곤경에 빠진 상황을 코난 특유의 용감함으로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코난에게 라나는 삼손의 머리카락처럼 괴력의 원천으로서, 발가락으로 몬스키라는 미녀악당(후일 코난의 편이 되어 다이스라는 코털선장과 결혼을 한다)이 모는 비행기를 막거나 비행기에서 곡예를 하고, 라나를 들쳐 업고 수십 미터에서 뛰어내리는 ‘묘기대행진’을 벌인다. 오, 정녕 사랑의 힘은 위대하도다! 바로, 여기에서 이리왕 로보처럼 사랑하는 이를 위하는 것이라면, 모든 것을 바치는 코난이 모습이 오버랩된다.

정수라가 부른 ‘난 너에게’의 가사에는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부분이 있는데, 코난은 라나를 위하여라면, 지옥구덩이라도 뛰어들 용감한 사나이다. 비록 허름한 속옷과 반바지 한 벌밖에 없는 만년 단벌신사이지만(무기도 조잡한 창 하나밖에 없다. 그런 한도에서는 단도를 차고 다니는 타잔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숭고한 사랑은 감동의 진면목을 보인다.

코난은 문명비판이 작품의 근저에 있어서인지, 총을 쏘는 사람이 있어도 피를 흘리고 죽거나 다치는 장면이 극도로 배제되어 있다. 어디까지나 인간에 의한, 인간의 순수한 사랑의 전개가 그 알파요, 오메가이다. 그리고 인간이 더불어 사는 의미가 무엇인지 일깨워 주는 호쾌한 명작이다.

그러나 이런 반론, 즉 ‘미래소년 코난’은 어린 아들의 사랑놀이 기본테마이므로, 그렇게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언어의 도단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문학과 예술의 이해에는 그 줄거리나 피상적인 것만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가 그 바닥에 있는 것을 전제로 이해하는 것을 결여한 것이다. 문학과 예술은 촌부에게도 보편적으로 간직한 인간 고유의 정서에 호소하는 매개체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우리가 걸작으로 꼽는 ‘적과 흑’이나 ‘부활’이나 그 내용자체는 상당히 통속적인 사랑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랑에 무슨 현학적인 지식과 권위가 필요한가? 코난의 괴력은 실은 보는 재미를 배가시키는 요소인 동시에 라나에 대한 극강도의 사랑을 암시하는 중의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written by 친구 성대진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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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서편제) 오정해

2014. 1. 28. 19:12

서편제, 오정해


멀티플렉스, 천만관객이 익숙하지만, 98년 이전 단일관 개봉시절 관객 100만명을 돌파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영화계의 염원이었다. 단관 개봉시절 93년 전까지 우리나라의 방화관객 최고기록은 관객 68만명의 '장군의 아들'이었고 그 이전기록은 58만명을 동원한 77년 장미희 주연의 '겨울여자' 라고 확인된다.


1993년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첫 100만명 관객을 기록했다. 

93년은 대학 3학년에 복학했던 황금기이다.  이 해에 '쥬라기공원'과 '원초적 본능'을 봤고, 서편제는 당시 대전 최고의 극장이었던 '아카데미극장'에서 상영했다.


92년 6월 군제대, 일본여행 3개월, 그리고 3학년 복학 후에 에너지가 충만한 시절, 앵글스 후배 미희가 소개한 산업미술학과 여학생하고 서편제를 보러 갔는데 내 맘속의 여유도 있었고 영상미도 스토리도 좋았었고 판소리의 새로운 발견에 많은 관객들이 놀랐었다. 

 

소리하는 여주인공 송화역의 '오정해'는 71년생이다. 

송화는 '한이 맺혀야 진정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의붓아버지 유봉에 의해서 두 눈이 멀어 버린다.


2014년 1월 2주차에 조달청 아름회장과 함께 녹내장으로 실명하여 퇴직한 직장내 초등학교 유일한 선배였던 용호선배를 만났다. 

선배에게 염치없는 위로를 하고 돌아왔지만 후천적 실명으로 겪는 극한의 고통을 보면서 보이지 않는 고통이 가장 큰 장애라고 생각 하게된다.






정부대전청사 지하로비에서 의외의 좋은 공연이 많이 열린다.

오늘(2014.1.28.) 정부대전청사 지하로비에서 설날을 앞두고 청사관리소에서 주최하는 무형문화재 공연이 있었고, 공연장에 나타난 예인은 서편제의 '오정해'였다. 나이가 들어 갈 수록 멋스러워진다. 


공연을 마친 오정해씨와 조달청 여직원들이 사진을 찍었다. 

체크무뉘 한복 치마가 오정해패션의 정점이었다. 학생교복치마에 주로 사용하는 체크무뉘가 한복 매칭에도 뛰어난 아름다움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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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서천


장항제련소, 금강하구둑, 이상재선생, 한산모시, 한산이씨, 소곡주, 홍원항, 비인반도, 춘장대해수욕장, 서천을 생각하면 연상되는 단어 들이다.

지명에 내자가 들어 있는 곳은 대부분 풍경이 좋은 곳들이다. 충청도에서는 옥천, 대천, 서천, 진천, 제천 등이 천자 돌림지역이고 서천이 가장 남쪽에 있다

 

대전에서는 유독 칼국수집이 많기도 하지만 칼국수를 좋아하는 식성을 가지고 있어서 인지 칼국수 탐닉이 도를 더해간다. 너무 탐닉하다 보니 서천에 살고있는 강선선배를 만나러 갔을 때 비인면 선도리 조개칼국수가 계속 생각이 난다. 조개를 반양동이 정도 넣고 끓인 칼국수를 다른 곳에서 맛보기는 불가하니 서천에 오면 꼭 들려보려고 하는 이유이다.

가장 최근에 갔을 때는 조개가 많이 줄어들어서 실망을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매력이 있다.



한산 소곡주

 

전통주를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는다. 접하기에 쉽지도 않지만 비교적 비싼 가격이기도 하고 전통주 고유의 맛을 잘 못하기도 한다. 그래도 가장 선호하는 전통주를 들어보면 한산 소곡주라고 하겠다. 1983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고, 서천군 한산면을 중심으로 퍼져 있는 한산지방의 명주라고 하는데, 끈적거림과 달착지근한 맛인데 명성만 높고 맛을 느끼기에는 아쉬운 다른 전통주와는 차별화 된다.


지금은 공정거래위원장이신 노대래 위원장이 조달청장 시절에 직협임원과의 식사자리에서 고향술이라고 좋아하시던 모습이 기억나는데 소곡주 덕분인 지 분위기가 좋았다. 

그 생각이 나서 몇년 전 외자장비과에서 행사를 준비할 때 소곡주 댓병 10병을 준비해서 폭탄주를 만들었다. 취하는지도 모르고 마시는 술이 소곡주라고 하더니 한 분이 술을 들이키다가 그자리에서 그대로 누워버렸다. 더 갔으면 나도 누웠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백제 유민들이 나라를 잃고 한을 풀기 위해 마신 술이라는 백제의 술이라는 유래는 그다지 신빙성은 없지만 술맛나는 스토리로 기억하기로 하고 일단 마셔보자. 그때 여기에서 주문했었다. 

http://www.sogokjuma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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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강맥주  (0) 2012.12.30


대전청사공무원연합 이웃돕기 행사


정부대전청사공무원연합회는 관세청, 통계청, 문화재청, 산림청, 중소기업청, 특허청, 조달청 노동조합이 대전청사에 입주한 각 기관들의 유대와 협력 및 청사내 시설물 이용, 직원 권익보호 등을 위하여 조직된 모임이다.

청내 기관중 병무청은 직원들의 권익을 대변할 수 있는 조직이 없어서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데 아쉬움이 남는 현실이다.

어느 단체이든지 연말에는 이웃돕기 등의 활발한 행사가 이루어진다.

진심성을 논하지 않더라도 사람으로서 사회에 대한 기여가 없다는 것은 존재자체의 부끄러운 일임을 알기에 잠시나마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청사건물은 외벽이 유리로 되어 있지는 않아서 유리온실로 전락한 다른 공공기관에 비하여 여름 철 온실근무는 하지 않더라도 계절별로 냉난방비 절약이라는 화두에 밀려 청내 근무자들이 겪는 근무환경에 대한 불만은 최고조이다.

 

대전청사공무원연합회에서 추위를 대하는 방편으로 내복입기행사 및 불우이웃돕기바자회를 12월 첫주에 청사 지하홀에서 개최했다. 12월 행사가 조금 늦은 감이 있어서 걱정을 했는데 판매행사 수일 전부터 닥쳐온 강추위가 청사구성원들의 내복구매욕구로 이어져서 줄을 서서 내복을 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런 장사를 대박이라고 할 것 같다.

 

대공연에서는 바자회수익금과 대공연의 든든한 후원자인 농협청사지점에서 기증한 쌀을 재원으로 하여 대전 복지만두레의 추천으로 12월 26일 생활이 어려우신 석교동 어르신들에게 전달하는 행사를 치뤘다.

 

비록 일년에 한 번뿐인 생색내기행사 이어서 민망했지만 다들 좋은 마음으로 기획한 일이었다.

청내 대부분의 노조위원장들의 임기가 연말로 만료되어 2014년은 대부분 신규 위원장들로 교체되기에 아마도 다 같이 치루는 마지막 행사라는 생각에 조금은 마음이 무거웠지만 다들 진심으로 뭉쳤었다.

 

행사의 첫 출발은 우선 대전청사내에서 관계자들의 사진촬영부터 했다. 농협정부청사지점앞에서 만난 각청 노조위원장들과 충청도 어투가 구수하신 농협지점장님 그리고 대전 복지만두레 관계자분들과 함께...




중구 석교동(돌다리동)


오늘 방문하는 장소는 중구 석교동이다. 

어릴 때 우리 집은 문창동이었다. 문창시장쪽이었는데 지금은 어디인지 알아볼수도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문창동과 석교동은 인접한 곳이어서 눈에 익은 예전 건물들이 보였다. 명보극장이 있었던 인삼센터 건물, 부사동사거리의 영빈관 중국집도 간신히 기억만 났다. 


청사에 있는 분들은 대부분 외지유입이 많아서 둔산동 주변을 제외하고는 대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더구나 이쪽 중구쪽은 운전면허 시험장이 있는 산내가는 길이라고 하거나 야구장이 멀지 않은 곳이라고 해야 알아 듣는 정도이다.  


낙후되었다는 말은 빈곤과 동일시 되어있다. 중구 자체가 활력이 사라진 곳이 되었고 중구에서도 작년에 방문했던 산성동이나 대전남쪽은 이 지역은 중구공동화가 발생하기 전부터 이미 변화가 없는 지역이어서인지 신축건물이 잘 보이지 않고 젊은사람 보다는 노인들이 많다.

석교초등학교는 1학년이 3개반 옥계초등학교는 2개반을 유지하기도 버겁다고 하니 석교초에서 분리한 옥계초가 다시 석교초와 통합해야 할 사정이라고 한다. 


석교동사무소 건물은 대로변에 있었는데 서구나 유성구에 있는 동사무소 건물에 비하여 너무 협소하고 낡아서  업무 환경이 매우 열악했다. 

대전시청 건물은 화려한데 비하여 대민업무가 많은 일선 현장에서는 이런 열악한 환경을 떠안고 간다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실내공간이 협소하여 동장님이 직원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시고 2층 회의실에서 업무를 보시고 있다.



▶ 젊은 중구, 활기찬 경제


▶ 석교동사무소(주민센터)에서 통계청, 조달청, 중소기업청...


▶ 동사무소 앞에서 기증품을 쌓아 놓고...


배달의 기수


석교동주민센터는 석교동, 옥계동, 호동을 관리하고 있다. 우리도 2조로 나누어서 이 지역에 쌀과 내의를 전달했다. 주민센터의 역활이 행정서류 발급보다는 사회복지 업무에 많이 비중이 높다고 한다. 

현업에서 일하시는 사회복지사분들이 고충이 계속 알려지고 있지만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많은게 우리의 현실이다. 각종 사회복지단체보다는 동사무소에 계시는 사회복지담당자분들께서 지역의 힘들게 사시는 어르신들의 사정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계셨다. 

1회성 행사일 망정 누군가를 돕고 싶다면 일단 단체보다는 동사무소에서 일하시는 사회복지사분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봉사가 될 것 같았다.


▶ 동 전체가 거리가 깨끗하다.


▶ 눈이 맑으신 어르신이 홀로 살고 계신다. 온기가 전혀 없는 집이 너무 어둡다. 뒤에 계신 분은 중구 송병노 노조위원장


▶ 집을 깨끗하게 정리해 놓으시고 살고 계시는 할머니는 집이 너무 추워서 파카를 입고 그리고 마스크를 쓰고 주무신다. 산동네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고 대부분 예전에 기름보일러가 설치되어 있어서 연탄으로 개조하지 않는 한 난방이 어려운게 현실이다.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하시는 할머니에게 젊으실 때 미인이시었을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다.

할머니는 곱게 웃으시며 아니라고 하시더니 곧 밉다는 소리는 안들어 봤어요 하고 말씀을 이으신다. 

미인할머니의 수준 높은 충청도식 답이다. 


▶ 통계청 송위원장님도 열심히 다니시고...


골목안 풍경


골목이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다고 설명을 해야겠다. 이날도 여러 명이 정주환경 개선을 위하여 벽화를 그리고 있었는데 세금 아깝지 않은 작업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부시고 다시 짇는 방식의 속칭 개발사업이 건설업자의 배를 불리지만 우리를 망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아름답게 정주할 수 있는 동네를 만드는 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동네가 아름다운 동네라는 것을 다들 알고 있는 것이다. 비록 아파트의 노예로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내 앞에 있기는 하지만..










석교동에서 귀가하면서 부모님 그리고 동생들과 함께 살던 집들이 하나씩 기억이 났다. 95년 이후로는 부모님이 행복을 꿈꾸시며 이루어 놓은 가족들이 모여 살지 못했다. 

가족이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 석교동의 기억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대공연 위원장님들과의 기억들도 추억으로 남아서 가슴으로 들어올 것 같고!

 




교육원 방문

 

2013년 9월부터 4개월간 조달교육원에서 배려해 주어서 공공기관직원들을 대상으로 정부원가계산실무 과목을 강의하는 좋은 경험을 했다.

임용 전에 몇 개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했던 기억과 수준 낮은 수업에 절망했을 학생들 얼굴이 선한데 이번에는 오랜만의 수업이어서 준비를 많이 하려는 과욕이 지나쳤고 스스로 수업준ㅂ에 지쳐버리긴 했어도 나열식으로 알고 있던 관련 원가관련 정보들이 정리되는 좋은 효과가 있었다.

진심으로 교육원에 감사....

그런데 정들자 이별이라고 하더니 교육원 이전사업으로 듣기만 해도 포근해지고 고등학교때 친구들이 생각나는 대덕연구단지 안에 있던 조달교육원도 김천혁신도시로 지난 12월 19일 이사를 했다. 


 

아직 준비중


간단한 짐을 옮기는 이사도 지치고 정신이 없었는데 교육원식구들이 대규모 시설이 이사를 마친지 

 

며칠 되지 않은 시점에 도와주지도 못하고 방문하자니 민망했다. 

 

중요한 시기에 교육원에 근무하는 우리 직원분들이 모두 교육원 세팅에 정신없이 바쁘다.




▶ 조달교육원 앞으로 넓은 광야가 보인다. 문 밖으로는 갈 곳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열심히 공부만 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이라는 좋은 의미이기도 하다.




▶ 지대가 추운곳인지 북향으로는 눈이 녹지 않고 제법 냉기를 느낄 수 있었다. 



 

▶ 4층까지 교육시설이고 옆 건물이 식당과 기숙사가 있는 기숙동이다.



 

▶ 조달교육원 사무실은 아직 이사 중이다. 대전에 있을 때보다 사무실은 배이상 커졌지만 행정인력은 늘지 않아서 일은 더 많아 질 것 같다. 사진 뒷 편으로 빈 책상 4개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청 자체 교수요원 4명을 위한 자리이다. 누가 올까?




▶ 이곳도 '직장'을 삭제해버린 화분아저씨의 만행



교육시설


교육원에는 총 4개의 강의실이 마련되었다. 전산교육장도 포함되어 있고 신설건물이기도 하지만 조달물품들을 수급할 때 신경을 많이 써서 인지 기본적인 시설은 수준급으로 보인다.

예산절감을 위하여 대전에 있던 설비를 상당부분 가지고 와서 활용하는 것 같다. 





▶ 나승덕님은 계속 공사중이다. 저 옷은 돌고래표로 바꿔줘야 하는데...



▶ 200석 규모의 강당을 아래서 보니 아름다운 아치이다. 대학에서도 수강생이 많은 강좌가 이런 곳에서

수업을 하는데, 언젠가 이런 곳에서 강의를 한다면 짜릿함에 전율이 올 것 같다.




▶ 아직 준비중인 전산준비실 겸 휴게실




▶ 교수연구실이 칸막이 형태로 되어 있다. 상근하시는 교수분들의 사기를 위해서라도 개인연구실 형태로 개조해서 연구공간을 제공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 분임토의실이 총 5개다. 




▶ 도서실은 아직 준비중이다. 수강인원을 고려한다면 책상이 더 필요할 것 같고 직장협의회에서도 책을 모아서 기증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할 예정이다.



편의시설


김천에 위치했다는 것은 전원 합숙교육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교육에는 장점이지만 수강생모집에는 단점이 될 수도 있는 동전의 양면같은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가장 다른 교육원에 비하여 비교우위인 시설은 체력단련실과 기숙사라고 할 수 있다.




▶ 일반 민간 고급헬스클럽 수준으로 갖추어진 체력단련장




▶ 휴게실에 아직은 의자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음 방문때에 변화된 모습을 기대히 보고




▶ 드럼세탁기 총 8대를 준비한 세탁실인데 넓은 공간에 세탁기만 배치되어 있어서 마치 중국에 온 것 같다.




▶ 기숙동 복도(공무원 스럽다)



▶ 분리수거도 하고




▶ 1인용 침대와 시중 고급이부자리(아르페지오)를 세팅했다.




▶ 이 책상에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




▶ TV는 아담하다. 낚시방송을 볼 수 있다고 윤ㅇㅇ선배님이 좋아하신다.




▶ 개인 냉장고



장애가 있는 분을 위한 교육시설


장애가 있는 분들을 위하여 휠체어 사용이 가능하도록 일부 숙소의 턱을 없애고 장애인 전용 화장실과 세면대를 설치했다.

일정부분은 관련법에 적용을 받았을지라도 자랑스럽게 받아들여진다.





▶ 휠체어 통과




▶ 휠체어와 눈높이를 맞춘 세면대




▶ 손잡이를 설치한 화장실이다. 비데가 없다. 추후설치




▶ 교육원 옥상이다. 정원으로 식재를 하면 보기에도 좋지만 건물 온도를 조절하여 냉난방비를 절약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걱정스러운 것은 이곳이 교육생들의 흡연장소가 되지 않을 까 하는 우려..



조달전문교육은 조달연구원에서


단언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조달교육이 체계적으로 가능한 곳은 이곳 김천의 조달교육원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공공기관에서 정부조달계약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선배직원에게 전수 받거나 시중에 있는 유사 서적으로 스스로 독학을 해야 한다. 그러나 조달청 교육자료를 배껴서 출판한 양심불량도서를 제외한다면 참고도서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계약은 종합적 판단의 결정체이다. 따라서 계약 등을 다루는 조달교육은 이론과 함께 실무에 대한 경험적 교육이 병행되지 않으면 효과가 반감한다.

교육원에서도 교육의 수준을 높이고 사용자위주로 교육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집중해 준다면 기관이전에 고생한 노력들이 보람으로 돌아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12월 24일 화요일이고 내일은 크리스마스이다.

김천에서의 하루는 구름한 점 없는 보이지 않는 눈이 부시게 햇살 따사로운 날이었다.


대전으로 가자 영규야! 





참, 와이파이가 개통되지 않았다. 교육생들에게는 비호감이겠다. 교육원 공식개소전에 무선와이파이 만큼은 꼭 최고성능으로 개통하고 적극 홍보도 했으면 한다.




김천 품질관리단 방문


공무원들에게는 중앙보급창으로 기억되는 

조달청 품질관리단이 용인시 수지구에서 경북 김천혁신도시로 이전했다.

1975년부터 삼성동 강남구청 별관자리에 있던 중앙보급창이 용인 수지에서 이젠 김천으로 이전한 것이다.


크리스마스 이브 직장협의회에서 품질관리단과 같은 곳으로 이전한 조달교육원을 방문했다.

바쁜 연말 일정상 나하고 김영규가 동승했고 오랜만에 차량 운전을 했다.

 

금강휴게소는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할 때 꼭 들르는 곳이다.

옥천에 위치하고 경치가 수려해서이기도 하지만, 어릴 때 부모님과의 추억이 기억되어서 이기도 한데

이 곳에서 겨울 얼음은 처음 본 것 같다. 




대전 서구 정부대전청사에서 경부선 동김천 IC까지 약 1시간이 소요되었다.

동김천 IC를 나오면 약 2분 거리에 요즘 보기힘든 벽돌로 조적한 건물이 보인다.

일단 차량을 이용한 접근성은 GOOD

김천구미역에서는 도보로 약 20~30분 소요된다고 하니 역에서도 차량을 이용해야 할 것 같다. 




약 1만평 규모의 부지에 품질관리단, 조달교육원, 교육생 기숙동이 완공되었다.

문제는 주변이 벌판이라는 현실과 대형공공기관이 아직 입주하지 않아 자생적인 편의시설이  전혀 없다는 막막함이다.  즉, 담배사려면 차타고 10분을 열심히 달려야 한다.

복지대책이 필요할 듯!





입구에는 김천시민일동의 환영 플랭카드가 있고

우리 일행을 환영해주는 플랭카드도 붙어 있다.

이런 대 환영이!




1층 안내데스크(?)에는 화분들이 많고, 직장협의회에서 보낸 화분도 있는데 

꽃집아저씨가 '직장'을 마음대로 지워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흑흑



      




조달청 최고의 구내식당은 여기


단장님과 대화의 시간을 마치고 마침 (일부러) 점심시간인 관계로 구내식당으로 직행했다

정말 궁금했다

품질관리단(교육원 포함)의 식당 밥맛이...

지방청 중에서는 경남지방조달청 구내식당이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한데

품질관리단 식당에서 만나는 직원분들의 표정이 밝다.


단정하고 깔끔한 메뉴들이다. 미소로 대해주는 미녀 조리사분도 친절하시고..

아직은 교육생이 없어서 직원만을 대상으로 임시로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해도

대박이다. 특허연수원 식당보다 한수 위인 것 같다. 같이간 영규도 맛에는 동감..







식사 후에는 사무실 구경을 하는데 독립청사의 장점이 비교적 넓은 공간과 신축건물답게 깨끗한 실내 환경이 훌륭하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실내에 설치된 탁구와 당구시설을 이용하는 직원분들이 보인다. 품질관리단 밖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내부에서 충분한 직원위락시설이 있어야 겠다. 외부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 







시험검사


요즘 품질관리단의 주력 대상품목은 가구라고 하더니 가구 시험 장비가 잘 세팅되어 있다.






그 외에 이화학 시험장비도 세팅 중이거나 완료 되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시험은 장비의 우수성보다 오퍼레이터의 운용능력이 좋은 결과를 좌우한다.

그동안 쌓여진 노하우로 품질관리의 최고 기관으로 발돋움 하기를 기원하면서

짧은 방문이지만 좋았던 하루였다.



▶ 대학원 실험실에서 사용하던 낮익은 기기들도 보인다. 기기들은 대부분 최상위급 레벨의 제품들이다.






단장님과 함께


품관단에 오래 근무하시는 직원분들에게 단장님의 인기가 높다.

직협회원들을 대상으로 같이 근무하고 싶은 간부를 선정하면 상위권에 랭크되는 것은 

이상윤 단장님이 사람을 대하는 진심과 열정은 서로 통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 교육원으로 이동하기 전에 단장실을 방문하여 기관이전으로 고생하시는 이상윤 단장님과 사진촬영


다음 일정은 도보로 1분이 소요되는 조달교육원으로 이동, 안내는 이교문서기관께서 맡아 주셨다.



김지연


거의 30년 전이니 아둔한 머리에 기억이 흐릿하지만 

80년대 중반 부산지역  대학출신 가수들의 등장은 놀라웠다. 

동아대 이상우, 동의대 높은음자리, 바다새, 경성대 전유나까지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를 통해 배출된 부산출신 가수들의 숫자도 많았지만

바다냄새 나는 노래들도 다 좋았던 것 같다.

사투리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쩔쩔매던 그 시절 부산출신 가수들이 이젠 50을 바라보고 있다.

이분들 노래를 쉽게 접할 수 있기도 하고 영상으로도 볼 수 있어서 반갑다. 


대전을 대표하는 가수는 충남대 출신 신승훈이다. 

목원대 음대 출신의 '이재성'은 촛불잔치로 큰 인기를 얻었고 좋은 노래를 많이 만들었다.

특유의 개성있고 시원한 창법을 가지고 있어서 그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재능에 비해서 운이 없던 것 같다.


자양동에 살던 친구들을 통해서 신승훈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대학에서 보이는 80년대 후반 신승훈은

이미 대전지역의 유명스타였다.


신승훈은 당시의 가수 등용문인 가요제 출신이 아니지만 

80년대 이미 대전의 유명 아마추어 가수로서 그 명성을 날리고 있었고 

80년대 대전의 은행동, 대흥동이 번화가인 시절에 라이브공연을 하는 없소들이 많아서 

지역의 대학축제, 라이브공연장에서 쉽게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88년에 은행동에 있던 게르만호프에서 부활의 희야를 부르며 공연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당시에 대전지역 대학 축제는 훗날 충남대 개그동아리를 창설한 명사회자 윤환용의 사회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고

거의 졸도수준의 웃음을 선사하는 사회자의 진행속에 마지막에 등장하는 신승훈이 부르는 '희야'와 '라밤바'는

축제의 하이라이트 였다. 


대전의 한남대학교에는 통기타 동아리 샤프랫이 있었고, 샤프랫 출신 '김지연' 은 한남대 국어교육과 87학번 이었던 것 같다.

몇년전에 여유만만이라는 프로에 나온 것을 보았는데 나이가 들어서 인지 통통해 졌다.

그녀를 처음 본 기억은 89년 충남대 공과대학 축제때였다. 어설픈게 기획한 한심했다 공과대학 축제 (당시에는 거의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이 났다)의 마지막 행사 공연장인 공대 2호관 가설무대에 등장한 초대가수가 김지연 이었고 그녀는 예뻤다.


약간 서늘해진 저녁날씨였다. 김지연은 자신의 최대 히트곡이 되는 '찬바람이 불면' 을 감칠맛 나는 음색으로 노래했고, TV드라마 주제곡으로 나온다고 했는데 그 뒤 최수종이 주연이었던 텔레비젼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의 주제곡으로 사용되면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음반이 나오기 전이었고 몇달 뒤 군입대를 하면서 LP를 구하지 못했는데, 결국 올해 중고 LP사이트에서 한장 구매하고 턴테이블에 올려보았다.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생각은 다들 어렸던 그 시절...

 

배철수의 7080에 출연한 김지연을 볼 수 있었는데 살이 오른 모습에 세월이 흘러간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외모는 옛모습이 남아있지만 노래는 예전보다 못한 것 같았다.

새로운 음반과 지속적인 음악활동을 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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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서갑 박병석의원

 

대전청사공무원연합회에는 7개 청(관세청, 중기청, 특허청, 통계청, 산림청, 문화재청, 조달청)이 참여하고 있다. 관세청의 장준영 노조위원장이 회장으로 있으며 대전청사 직원들을 대표하여 대내외 활동을 하는데 2013년이 가장 활동이 활발하고 뚜렷한 성과를 얻고 있다. 연합체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지난 8월, 더위를 뒤로하고 대공연의 마당발인 특허청 김정훈노조위원장이 대전 서갑을 지역구로 하며 현재 국회부의장이신 박병석의원을 초대하여 각 청의 현안 사항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정부대전청사의 상당수 공무원들은 타지역에서 이주하여 정착한 경우로서 대전청사와 구성원들은 대전시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퇴직 후에도 많은 분들이 대전에 정착하는 것은 대전이 주는 편안함과 텃세를 부리지 않는 대전사람들의 성향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대전청사내 각 기관에 많은 도움을 주시기를 기대하며, 식당앞에서 사진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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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 용대리, 군축교, 신남



    양희은의 한계령(하덕규 작사/작곡)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80년대 말 까지도 군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에게 강원도 인제 그중에서도 원통은 기피지역 이었다. 오죽하면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라는 유행어가 있기도 했는데, 기억을 돌이켜보면 인제보다는 신병들을 배를 태워서 소양호로 이동시켰던 양구의 2사단이 힘든 곳이었다. 


당시에 오지였던 원통은 이번에 44번 국도로 내려오면서 보니 오히려 인제읍보다 커 보였다. 원통 초입에 12사단 을지부대 사령부가 있었다. 12사단은 고 노무현대통령이 68년부터 34개월간 사병으로 군생활을 한 부대이다.  인제 신남에 있는 보급부대 경리였던 나는 부대 자금이나 사병봉급을 원통의 12사단 사령부에서 수령하는 사정으로 수시로 12사단에 출입했었는데 막상 이번에 보니 부대입구를 찾을 수 가 없었다. 우회도로가 생긴 탓도 있지만 지형지물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변해가는 가 보다.

 

우리부대는 38선 아래 신남면에 있었다. 44번 국도가 위병소 앞으로 지나가는 교통이 비교적 좋은 곳이었고 여름이면 설악산으로 강릉으로 가는 차들이 줄을 이어서 외롭지 않았다. 부대에서 인제까지는 차편으로 20분정도의 거리였는데, 부대에서 신남면소재지까지는 약 20분 정도 걸어다녔고, 신남면에서 인제읍까지는 지나가는 군용트럭을 얻어 타거나 시내버스로 가곤 했었다. 가끔은 인제에 미치기 전에 다른 곳으로 가는 군용 차량을 타면 인제까지 걸어가곤 했었다.

 

소양강 (구)군축교 아래는 항상 물이 차 있지는 않아서 평소에는 푸른 초원지대로 변한다. 그 초원에서 군부대들이 야영 훈련을 하곤 했는데 이등병때인 90년 초여름에 야외에서 훈련이라는 것을 해보면서 야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때 사진에 있는 김광락 대위는 지금은 대령으로 근무하고 있고 군수품 계약관련으로 연락이 된다.

그때 훈련중에 첫날 초원을 가로지르며 갑자기 나타난 노루가 수백명 군인들을 보고 놀라서 달아났었다. 모두 소리지르고 노루를 따라 달리던 그때 그사람들이 생각난다. 군축교밑은 최근에는 루어낚시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90년에는 설악산 백담사에 전두환씨 부부가 유배중이었다. 90년 가을에 인제로 면회를 오신 부모님하고 백담사에서 전씨부부하고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나는데 찾아보니 전씨부부하고 같이 찍은 사진이 남아있다.

90년 11월 초 소양강 군축교에서 대형버스추락사고가 일어났고,  당시 21명이 사망한 사고는 백담사에 유배중인 전두환씨 부부를 만나고 서울로 귀가하던 대구공고 재경후배부부들이 탄 관광버스가 군축교 아래로 추락하면서 발생했는데,  이 관광버스는 무자격 운전기사의 불법영업임이 밝혀졌고 피해를 당한 분들은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해서 관광버스의 불법운행 실태를 일대 정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고 다음날  인제읍에 있는 국민은행에 가면서,  군축교 사고를현장을 보려고  일부러 버스를 타지 않고 인제읍까지 걸어갔는데 군축교 오른 편에 빠져있는 버스를 볼 수 있었다. 시신은 이미 수습해서 보이지 않았고 버스는 물에 대부분 잠겨있었는데 유실물이 없도록 그물로 버스주변을 감싸놓았었다. 물이 너무 맑고 진한색이서 지금도 기억이 난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44번 국도를 타고 운전하면서 차창 밖으로 내가 가장 젊음이 넘쳤던 시절에 군 생활을 한 작은 부대를 다시 보니 옛 기억이 난다.




추억이 많은 하조대


어제 밤 여행 멤버들 모두 백사장을 걷지 않으면 후회 할 것 같은 마음이었다. 

밤바다 하조대 해수욕장 백사장을 거닐었는데,  몇년 전 대전 토인회 멤버들이 강원도 여행을 했을 때, 이곳을 들렀고, 인하대 이동원교수님도 젊은시절 하조대의 추억을 기억했는데, 중소기업청 윤영희위원장님도 젊은 시절의 좋은 기억이 남아 있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하조대는 추억을 남기는 곳인가 보다.

 

아침식사를 간단히 하고 해수욕장이 아닌 하조대(정자)로 이동했다.  나는 충청도에 사는 지리적 여건으로 주로 서해바다를 찾지만 서해는 동해의 절경을 따라올 수 없음이다. 동해의 절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이곳 하조대는 멋진 백색 등대와 함께 풍경이 아름답다.











약 30분 정도면 하조대를 둘러 볼 수 있다. 주차장이 부족하여 차량이 밀리면 주차난이 있겠지만 해수욕장만 보고 가기에는 동해의 풍광과 바닷바람이 주는 기쁨이 크다. 





                   ▲ 오색약수에 물이 없다.





왜 자연용출수를 주로 약수라고 부르는 것일까!  약이 되는 물이 있다면 약국 병원은 어떻게 하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약수는 강원도의 오색약수와 충청도의 초정약수라고 할 수 있다. 약수가 무슨 효과를 볼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닌 것을 다들 알고 있다. 다만 그 유래와 독특한 맛을 즐기는 사람들의 만족감이 심신을 맑게 해준다. 


1990년이다.  인제에서 군생활 중에 부모님하고 함께 오색약수에 왔을 때는 물이 이렇게 부족하지는 않았던 기억이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약수는 고갈되어 용출량이 너무 적어서 한 모금 마시기에도 부족하였고 물을 떠가기에는 줄을 서있는 사람들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뭐든지 고갈되는 시대인데 오색약수도 고갈되는 것인지 아니면 자연현상인지 약수터의 명운이 달려있는 것 같다.

약수터 사방에 케이블카를 설치하자는 플랭카드를 붙여 놓았는데 자연을 망치는 케이블카보다는 약수의 수량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게 먼저일 것 같다. 오색약수터에 오색약수는 없다.







오색지구에 태풍에 의한 수해가 발생하여 현재는 대부분 재정비를 하였다. 비교적 무난하지만 인공적인 복구가 자연스러움과 어울리지 않아서 통상적인 관광지로 전락하는 것 같다.  새로운게 새로운게 아니고 낡은게 낡은 것이 아니다. 







관광지에는 대부부 산채요리를 하는 식당들이 많다. 호객행위는 맘에 들지 않지만 정갈한 데를 찾다가 소개를 받아서 찾아간 식당은 정갈한 음식솜씨와 주인 내외의 친철함이 알려진 곳이었는데 거의 먹지 못했다. 

대부분의 음식에 설탕을 넣었다. 담백한 산속음식을 기대했는데 단맛은 어울리지 않는다. 조리하시는 분이 음식에 설탕을 사용하는 습관이 있으면 쉽게 변하지 않는다. 너무 짜거나 설탕을 사용하는 식당은 피하는데 그래서 식당 소개는 하지 않기로 하고, 나의 20대 초반의 기억을 묻어 놓은 인제로 출발....   





주문진은 항구다


주문진(注文津)은 강릉시에 속해있으며 1940년 읍으로 승격했다고 한다. 대공연 일행들이 낙산사를 둘러보고 양양이나 속초보다는 주문진을 가는 것으로 합의하고 곧장 주문진항으로 달렸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동해의 항구답게 포구가 크지는 않지만 아담하게 잘 발달되어 있다. 




                   ▲ 우리나라 어느 항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수협 냉동창고



                   ▲ 주문진에서 조금만 노력한다면 항을 예쁘게 정비할 수 있을 것 같다.


                   ▲ 방실이인줄 알았는데 밤실이 


                   ▲ 동해는 참문어가 많이 보인다.


                   ▲ 내륙지방 사람들도 좋아하는 골뱅이


                   ▲ 수산시장 안내를 받고 있다




                   ▲ 동해안답게 문어, 오징어, 가자미 등이 보인다.  도루묵도 보이는데 알이 없다.


대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대게는 피하고 싶었는데 나 빼고는 다들 좋아한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잘 골라서 먹어야 겠다. 여름보다는 겨울이 맛이 좋을 것 같고..





양양에는 낙산사가 있다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직장에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을 경험할 때면 일상을 탈출하고 싶어진다. 

그 상식에 반하는 일이 직원들간의 갈등이고 잘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욕심이면 다 덮고 사라지고 싶다. 

며칠간 동료들의 이기적 행동을 보면서 높아진 실망감을 피하려고 휴가를 내고 대전공무원연합의 강원도 여행겸 워크숍에 동참했다.


대전에서 가장 먼 곳은 제주도인데 접근이 어려운 여건상 이번 여행은 내륙에서 가장 원거리인 강원도 그것도 양양이나 고성이니 마음을 다스리기에는 적합한 여행지이다. 


90~92년 강원도 인제에서 군생활을 했던 기억도 새록새록 올라오고 옛 기억을 되집어 보는 추억의 여행..   


차를 렌트했는데 청사까지 배달을 해준다. 8명이 탑승하고 고속도로로 4시간 정도 이동하여 비교적 쉽게 낙산사에 도착했다. 86년 3월 대덕고 수학여행때 처음 왔는데, 당시는 대전에 남녀공학 고등학교가 많지 않던 시절이어서 남녀 학생들이 함께 가는 수학여행이 드물었고 재미도 있었다. 그래서 인지 4개반 약 230명이 어울렸던 추운 3월의 수학여행은 추워도 춥지 않았다. 







              ▲ 동해는 물이 맑고 차다. 서해에서의 바다는 흙탕물과 갯벌인데 이 곳은 바위와 모래 그리고 철조망. 



              ▲ 홍련암






화강암 구조물은 가장 한국적이다. 이 난간 구조물은 낙산사와 어울리지 않아서 자세히 보니 모서리를 V컷 가공처리 했다.  

도로경계석도 V컷은 중국수입품에서만 나타나는데 이런 문화공간은 인간의 혼이 담겨있는 자연스러움이 필요하고 이런 주변구조물도 세세한 신경을 기울여서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든다.



              ▲ 멀리 보이는 풍경은 쏠비치


              ▲ 2005년 산불로 유실되었다가 복원된 원통보전


인제에서 군복무하던 90년 가을에 부모님이 면회를 오셨을 때, 백담사와 낙산사를 구경했었다. 당시 백담사에는 전두환 이순자 부부가 유배중이었고, 이들 부부를 보기 위하여 전국의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들었고 나도 얼떨결에 비닐하우스안에서 애국하자는 강연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2005년 강원지방의 대화재로 낙산사가 거의 전소되는 피해가 있었다. 화마의 피해는 엄청난 문화재의 손실이 있었고 몇년 후 에 토인회회원들하고 낙산사를 방문했을 때 아직 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었는데 이번에 방문해보니 거의 복구가 되었고 아늑함도 느낄 수 있었다. 









              ▲ 관음지와 보타각, 보타전


우리나라 최고의 건축가이신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신 절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유명 고찰에는 의상대사께사 창건했다는 기록을 적어 놓았는데 의상대사는 노래하는 스님보다 더 바쁘셨겠다. 많은 사찰들이 신라시대를 기원으로 하여 고승들이 창건한 역사를 내세우고 있지만 현실을 벗어난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낙산사는 신라시대를 기원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빼어난 풍광과 아름다움을 가진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을 다스리고 가족애를 느끼기에는 최고의 장소라고 하겠다.


 

Life is

거짓말

2013. 6. 30. 18:59



거짓말

 


예브게니 옙투셴코

 

 

아이들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네

 

허위를 진실인 양 말하는 것도 잘못이지

 

아이들에게 천국에 하느님이 계시고

 

이 세상에 잘 굴러간다고 말하는 것도 잘못이야

 

아이들느 자네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안다네. 아이들도 인간이거든.

 

아이들에게 숱한 어려움에 대해 말해주게

 

앞으로 일어날 일만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도

 

분명히 보게 해 줘야 하네

 

살면서 맞닥뜨리게 될 장애와 난관에 대해 말해주게

 

마주치게 될 슬픔과 고통에 대해 말해주게

 

지옥 같은 일을 겪에 될지도 모른다는 것도 알려주게

 

행복의 대가를 아는 자만이 행복할 수 있지 않은가

 

잘못을 알면서도 용서해서는 안 되네

 

잘못을 알면서도 용서해서는 안 되네

 

그냥 두면 반복되고 늘어나

 

나중에 우리 학생들은

 

우리가 용서했다는 것을 용서하지 않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