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튼 동물기’는 동물에 관한 일화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한 책인데, 그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이 ‘이리왕 로보’이다. 그 줄거리는 사냥꾼들이 절대로 잡을 수 없고, 도리어 사냥꾼들을 데리고 놀 정도로 대단한 이리인 로보가 어느 날 사냥꾼에게 순순히 잡혔는데, 그것은 단지 자기의 짝인 블랑카의 안위를 위한 것이라는 ‘동물판 순애보’이다. 실제로 ‘이리왕 로보’를 읽어보면, 로보가 사냥꾼에게 잡힘으로써 로보의 블랑카에 대한 사랑이 승화된 카타르시스가 감전이 된 듯 뚜렷할 정도로 느껴진다.


여자에게 사탕발림으로 ‘나 자기를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어. 자기는 내 목숨보다 소중한 사람이야’라고 ‘자겁’을 들어가는 남자가 있을 수 있으며, 드라마나 유행가에서는 아직도 흔하다. 그러나 아직 내 나이는 충분히 젊지만, 여자를 위하여 죽는 남자를 실제로 본 적은 없다.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대형가수 윤복희씨의 ‘왜 돌아보오.’라는 노래의 가사에는 이런 것이 있다.


‘사랑한단 말을 마오. 유행가 가산줄 아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극진한 사랑이다.

미래소년 코난은 코난과 라나의 극진한 사랑이 기본 테마이다. 배경은 극성을 이루던 인류의 문명이 인간의 탐욕으로 완전히 몰락한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하이하바라는 섬으로, 여기에서 물고기를 잡는 순박한 소년 코난이 태양광에너지를 개발할 지식을 보유한 라오박사의 유일한 혈육 라나가 악당 레프카를 피하다가 곤경에 빠진 상황을 코난 특유의 용감함으로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코난에게 라나는 삼손의 머리카락처럼 괴력의 원천으로서, 발가락으로 몬스키라는 미녀악당(후일 코난의 편이 되어 다이스라는 코털선장과 결혼을 한다)이 모는 비행기를 막거나 비행기에서 곡예를 하고, 라나를 들쳐 업고 수십 미터에서 뛰어내리는 ‘묘기대행진’을 벌인다. 오, 정녕 사랑의 힘은 위대하도다! 바로, 여기에서 이리왕 로보처럼 사랑하는 이를 위하는 것이라면, 모든 것을 바치는 코난이 모습이 오버랩된다.

정수라가 부른 ‘난 너에게’의 가사에는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부분이 있는데, 코난은 라나를 위하여라면, 지옥구덩이라도 뛰어들 용감한 사나이다. 비록 허름한 속옷과 반바지 한 벌밖에 없는 만년 단벌신사이지만(무기도 조잡한 창 하나밖에 없다. 그런 한도에서는 단도를 차고 다니는 타잔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숭고한 사랑은 감동의 진면목을 보인다.

코난은 문명비판이 작품의 근저에 있어서인지, 총을 쏘는 사람이 있어도 피를 흘리고 죽거나 다치는 장면이 극도로 배제되어 있다. 어디까지나 인간에 의한, 인간의 순수한 사랑의 전개가 그 알파요, 오메가이다. 그리고 인간이 더불어 사는 의미가 무엇인지 일깨워 주는 호쾌한 명작이다.

그러나 이런 반론, 즉 ‘미래소년 코난’은 어린 아들의 사랑놀이 기본테마이므로, 그렇게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언어의 도단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문학과 예술의 이해에는 그 줄거리나 피상적인 것만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가 그 바닥에 있는 것을 전제로 이해하는 것을 결여한 것이다. 문학과 예술은 촌부에게도 보편적으로 간직한 인간 고유의 정서에 호소하는 매개체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우리가 걸작으로 꼽는 ‘적과 흑’이나 ‘부활’이나 그 내용자체는 상당히 통속적인 사랑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랑에 무슨 현학적인 지식과 권위가 필요한가? 코난의 괴력은 실은 보는 재미를 배가시키는 요소인 동시에 라나에 대한 극강도의 사랑을 암시하는 중의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written by 친구 성대진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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