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빈첸시오의 집


80년대 초·중반 대덕군이 편입되기 전 대전 인구가 많지 않았다.

그당시에 신흥동 충남중학교를 다녔는데 우리집은 중구 문창동 대전천변에 있었다.

맑은 물이 흐르는 대전천은 10여년 전부터이고, 당시에는 하수정화가 되지 않아서인지 악취가 진동하는 지저분한 곳이었다.


대전천변 문창시장입구에 우리 집이 있었고 그 옆으로는 소규모공장, 가구가게, 목공소, 고물상(지금도 고물상이 많다), 사람들 그리고 아이들이 많았다. 천 건너편 동구 인동·효동에는 중화실업이라는 섬유방적공장이 있었는데 지금 인동현대아파트자리이다.


90년대 초반부터 대전의 외곽이던 둔산지구가 개발되고 유성구 반석동 등에도 대규모 주거단지가 되면서 동구와 중구는 도시 공동화 현상을 겪고 있다. 

둔산동 갤러리아백화점 주변은 공군기술교육단, 32사단, 통신학교 등 군부대가 많았고 안쪽으로 도룡동입구까지 대규모 둔산개발이 이루어지면서 대전이 중심이 바뀐 것이다. 

중구에서도 변두리였던 문창동, 부사동은 활기없는 주거지역이 되었고 그 안쪽으로 석교동, 옥계동, 호동 등은 대전의 시골마을로 전락해 버렸다. 야구장앞에 있는 문창초등학교가 한학년에 2학급으로 시골학교 수준으로 인원이 줄었다고 하니 그 많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오랜만에 가본 우리 집은 공터가 되어 시장공영주차장으로 변해있었고 그나마 반가운 것은 문창시장이 잘 정비되어 활기가 있는 모습이었다. 

 




조달청 봉사동호회에서 급식봉사활동을 하는 날이다.

회원은 아니지만 직장협의회에서 비용일부를 후원하면서 회장으로 참가했는데, 이번 주 방문지가 문창동 예전에 살던 우리 집 뒤에 있는 "성 빈첸시오의 집"이어서 더 반가웠고 매우 소극적이었던 중학교 시절 내 생각도 많이 났다.


어버이날을 맞아 급식봉사활동에 참가한 인원은 총 9명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을 찾아 뵙지는 못했지만 같은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봉사동호회에서는 떡을 준비했고 직장협의회에서는 어르신들을 위한 양말을 기증했다.




문창동은 부사동과 이어져 있다. 부사동에는 과거 공설운동장이 있었고 공설야구장은 프로야구를 볼 수 있는 한밭야구장으로 이름이 바뀌어 지금까지 이어져 온다.

운동장에서 문창초등학교 쪽으로 큰 교회 몇개와 문창동성당이 있다. 30년이 넘었지만 그 성당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고 지역사회에서 성 빈첸시오의 집을 운영하며 급식봉사를 하고 있다.

무료급식이지만 공짜는 아니다. 밥값은 100원이다. 공짜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식수인원 파악도 수월하다고 한다. 







어버이날을 기념하려고 성당측에서 닭죽을 준비하셨다. 




음식솜씨가 거의 '일류쉐프'이시다. 



성 빈체시오의 집은 자원봉사로 운영되고 있는데, 대전의 각 성당에서 어르신들이 돌아가면서 봉사활동을 하신다. 

오늘은 산성동성당 어르신들이 힘써주셨고 조달청은 그 분들을 도와드리는 서브봉사활동을 했다.

 



▶ 일단 옷부터 갈아입고... 







▶ 칼솜씨가 날렵한? 김회원 






▶ 항상 진정성으로 세상을 대하는 조달청 봉사동호회 설동완 회장(님) 







산성동성당에서 오신 원로부터 젊으신 여자분까지 모두들 열심히 일하시고 얼굴이 맑아 보인다. 







▶ 원로분께서 너무 열심히 일하셨다.  존경스럽다






▶ 잠시 망중한 






성 빈첸시오의 집에서는 매일 200~250여분의 어르신께 급식을 하고 있다.

작년까지 보문산입구에 있는 중문교회도 급식봉사를 했지만, 철수하면서 이 곳의 급식인원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 항상 일하기 전에 든든하게 밥을 먼저 먹는다.  




▶ 작년에 입사한 신입직원들과 함께.. 



▶ 봉사활동을 마치고 기념사진 



어버이날이기도 하지만 예상보다 어르신들이 많았다. 

어쩌면 식사보다는 대화를 하면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일 것 같다.  

육신의 외로움과 가난이 결합하면 세상은 너무 잔인하다. 어울리며 살아가는 그런 세상을 꿈꾸는자 다 어디에 있을까.. 

사회적 불평등이 개선되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분들이 많아 지기를 희망해본다.

난 사진촬영한다고 일을 하지 못해서 동호회원들 보기 민망하다.

오늘 한끼 식사의 가치를 절절히 느낀다.

 

김지연


거의 30년 전이니 아둔한 머리에 기억이 흐릿하지만 

80년대 중반 부산지역  대학출신 가수들의 등장은 놀라웠다. 

동아대 이상우, 동의대 높은음자리, 바다새, 경성대 전유나까지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를 통해 배출된 부산출신 가수들의 숫자도 많았지만

바다냄새 나는 노래들도 다 좋았던 것 같다.

사투리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쩔쩔매던 그 시절 부산출신 가수들이 이젠 50을 바라보고 있다.

이분들 노래를 쉽게 접할 수 있기도 하고 영상으로도 볼 수 있어서 반갑다. 


대전을 대표하는 가수는 충남대 출신 신승훈이다. 

목원대 음대 출신의 '이재성'은 촛불잔치로 큰 인기를 얻었고 좋은 노래를 많이 만들었다.

특유의 개성있고 시원한 창법을 가지고 있어서 그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재능에 비해서 운이 없던 것 같다.


자양동에 살던 친구들을 통해서 신승훈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대학에서 보이는 80년대 후반 신승훈은

이미 대전지역의 유명스타였다.


신승훈은 당시의 가수 등용문인 가요제 출신이 아니지만 

80년대 이미 대전의 유명 아마추어 가수로서 그 명성을 날리고 있었고 

80년대 대전의 은행동, 대흥동이 번화가인 시절에 라이브공연을 하는 없소들이 많아서 

지역의 대학축제, 라이브공연장에서 쉽게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88년에 은행동에 있던 게르만호프에서 부활의 희야를 부르며 공연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당시에 대전지역 대학 축제는 훗날 충남대 개그동아리를 창설한 명사회자 윤환용의 사회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고

거의 졸도수준의 웃음을 선사하는 사회자의 진행속에 마지막에 등장하는 신승훈이 부르는 '희야'와 '라밤바'는

축제의 하이라이트 였다. 


대전의 한남대학교에는 통기타 동아리 샤프랫이 있었고, 샤프랫 출신 '김지연' 은 한남대 국어교육과 87학번 이었던 것 같다.

몇년전에 여유만만이라는 프로에 나온 것을 보았는데 나이가 들어서 인지 통통해 졌다.

그녀를 처음 본 기억은 89년 충남대 공과대학 축제때였다. 어설픈게 기획한 한심했다 공과대학 축제 (당시에는 거의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이 났다)의 마지막 행사 공연장인 공대 2호관 가설무대에 등장한 초대가수가 김지연 이었고 그녀는 예뻤다.


약간 서늘해진 저녁날씨였다. 김지연은 자신의 최대 히트곡이 되는 '찬바람이 불면' 을 감칠맛 나는 음색으로 노래했고, TV드라마 주제곡으로 나온다고 했는데 그 뒤 최수종이 주연이었던 텔레비젼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의 주제곡으로 사용되면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음반이 나오기 전이었고 몇달 뒤 군입대를 하면서 LP를 구하지 못했는데, 결국 올해 중고 LP사이트에서 한장 구매하고 턴테이블에 올려보았다.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생각은 다들 어렸던 그 시절...

 

배철수의 7080에 출연한 김지연을 볼 수 있었는데 살이 오른 모습에 세월이 흘러간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외모는 옛모습이 남아있지만 노래는 예전보다 못한 것 같았다.

새로운 음반과 지속적인 음악활동을 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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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서갑 박병석의원

 

대전청사공무원연합회에는 7개 청(관세청, 중기청, 특허청, 통계청, 산림청, 문화재청, 조달청)이 참여하고 있다. 관세청의 장준영 노조위원장이 회장으로 있으며 대전청사 직원들을 대표하여 대내외 활동을 하는데 2013년이 가장 활동이 활발하고 뚜렷한 성과를 얻고 있다. 연합체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지난 8월, 더위를 뒤로하고 대공연의 마당발인 특허청 김정훈노조위원장이 대전 서갑을 지역구로 하며 현재 국회부의장이신 박병석의원을 초대하여 각 청의 현안 사항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정부대전청사의 상당수 공무원들은 타지역에서 이주하여 정착한 경우로서 대전청사와 구성원들은 대전시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퇴직 후에도 많은 분들이 대전에 정착하는 것은 대전이 주는 편안함과 텃세를 부리지 않는 대전사람들의 성향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대전청사내 각 기관에 많은 도움을 주시기를 기대하며, 식당앞에서 사진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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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간 주차 (Space Park-ing)' 갤러리 오픈

 

도안동 아파트 거실을 아트타일로 꾸미면 미적인 아름다움과 음향판 효과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요일 오후 대학시절부터 아트타일 공예작업을 하는 앵글스 후배 미희를 만났다. 몇년만에 만나는 자리를 역시나 게으른 내가 약속시간에 늦었다. 돌이켜 보니 95년에 같이 대학원시험을 보았는데 어렸던 후배가 벌써 40이 넘었다고 한다.

벽지, 목재, 석재(대리석 등) 이외에는 벽장식에 사용할 소재가 많지 않은 것이 집 지을 때의 일반적인 고민이다. 아트타일을 사용하면 상당히 만족스러운 장식효과가 있지만 시공이 복잡하고 비용이 높으며 이사할 때 탈착이 어려운 단점이 있다. 후배가 시공의 어려을 설명하며 적극 권하지는 않는다. 나도 흙을 소재로 사용한 작품에 대한 매력을 느끼지만 아파트벽에 적합할 지는 고민스러웠다. 그러나 개인주택이라면 주저함이 없을 것 같다.


금요일 오후의 여유로움을 즐기고 싶은 마음에 마침 선화동에 있는 기라에게 연락했다. 식사후의 장소는 화가 박석신이 운영하는 갤러리로 정하고 미희, 기라와 함께 출발.

주차장을 개조한 갤러리 키작은 하늘보기가 'PARKing 문화공간 주차'로 이름이 달라졌다. 저번에 왔을 때는 아직 오픈하지 않았을 때였다고 한다. 화가의 성인 PARK 과 진행형 ing, 주차장의 뜻이 합해져서 문화공간 주차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갤러리와 문화공간의 차이는


이 곳이 화가 박석신의 개인 갤러리와 크로키 등의 수업을 하는 장소로만 알고 있었는데 화가는 세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쉼터 역활을 해줄 수 있는 공간을 꿈꾸며 문화공간을 마련했다고 한다.

갤러리를 연상하면 몇점되지 않는 작품을 잠시 보는 장소였는데 예술과 체험문화를 결합한 대중으로의 적극적인 접근은 문화빈곤의 도시 대전에 꼭 필요한 현명한 시도인 것 같다.




                           이름모델과 대화를 하며 감성을 뽑아낸다. 편한 대화..



                              ▲ 이름이 작품으로 변하는 광경

 


'달빛도 때론 모양을 달리하지요'


화가 박석신(박교수)은 갤러리에서 내이름과 미희부부의 이름으로 각각 글씨그림을 그려주었다그림이 완성되어 눈앞에 보이기까지 기대와 설레임 그리고 약간의 걱정도 되는데 결과는 놀라움과 기쁨으로 돌아온다.

박교수가 내게 보내준 메시지는 '달빛도 때론 모양을 달리하지요'


 

 




내이름이 갤러리에 걸리고


박교수의 제안으로 작품이 갤러리에 전시됐다. 이런 영광이 있나. 정말로 지치고 바쁜 생활이 당연하게 받아 들여지던 내 모습이 편하게 쉬고 있는 것 같다. 가족들 이름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다시 보니 미희 이름이 아트다. 박교수는 아름다울 미를 저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하고 감탄스러웠다. 미희는 도예작품에 사용하고 싶어한다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이름을 남기고 싶은 사람, 위안 받고 싶은 사람, 미술이 알고싶은 사람 문화공간 주차로 가서 박 교수를 만나보기를 권한다. 문화공간 주차는 대흥동 대전여중 앞에 있다.

그리고 나는 이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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