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s

거짓말

2013. 6. 30. 18:59



거짓말

 


예브게니 옙투셴코

 

 

아이들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네

 

허위를 진실인 양 말하는 것도 잘못이지

 

아이들에게 천국에 하느님이 계시고

 

이 세상에 잘 굴러간다고 말하는 것도 잘못이야

 

아이들느 자네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안다네. 아이들도 인간이거든.

 

아이들에게 숱한 어려움에 대해 말해주게

 

앞으로 일어날 일만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도

 

분명히 보게 해 줘야 하네

 

살면서 맞닥뜨리게 될 장애와 난관에 대해 말해주게

 

마주치게 될 슬픔과 고통에 대해 말해주게

 

지옥 같은 일을 겪에 될지도 모른다는 것도 알려주게

 

행복의 대가를 아는 자만이 행복할 수 있지 않은가

 

잘못을 알면서도 용서해서는 안 되네

 

잘못을 알면서도 용서해서는 안 되네

 

그냥 두면 반복되고 늘어나

 

나중에 우리 학생들은

 

우리가 용서했다는 것을 용서하지 않을테니까 







서해안 바다낚시


대전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바다낚시 출조지는 서해, 그중에서도 서천의 마량포구, 홍원항, 보령의 대천항, 무창포, 오천, 그리고 당진시의 장고항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낚시와 인생을 함께 하는 우리 청 낚시 선배님들은 돔류의 대상어가 부족한 서해안보다는 통영, 여수 등등 남해쪽으로 수시로 출조하지만, 서해바다는 서해바다는 낮은 수심, 뻘물 그리고 고패질을 하는 낚시방법 등 독특한 재미를 안겨주는 특성이 있다.


작년부터 조달청 낚시동호회도 젊은 회원들의 가입 및 참여를 유도하고 도를 닦기 보다는 가끔은 즐기는 낚시를 추구하기로 결정하고, 바다낚시 출조의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서해쪽 항구는 수도권에서 가까운 곳부터 인기가 많은 탓인지 낚시배 예약의 불편함으로 당진, 태안 쪽 보다는 자연경관이 수려한 서천군 마량, 홍원항을 찾고 있다. 각 항구 포구마다의 느낌이 다르고 특징도 있지만 서해바다는 그리 넓지 않고 충남쪽은 더 좁아서 출발지는 다르지만 매번 비슷한 장소에서 낚시를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번 서해안 출조(2013.6.)는 대전에서 서천, 당진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의 혜택을 보는 셈인데, 조달청 낚시동호회의 바다낚시는 다수 회원들이 대어를 잡을 수 있는 깊은 바다로의 출조의견을 모아서 작년 쭈꾸미낚시를 갔을 때 잘 협조한 해돋이낚시의 도움으로 홍원항 도깨비호를 임차해서 서해 외연도까지 출조했다.  













충청남도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유인도인 외연도의 유래는 안개(해무)가 많아서 늘 연기에 쌓여있는 섬이라고 하는데 이 날도 역시 해무가 가득하다. 해무가 많으면 조황이 좋지 않다는 속설이 있어서 걱정 되었다. 20명이 승선가능한 배를 총 16명이 승선한다고 예약을 했는데 전날 4명이 급한 일이 발생하여 불참하는 변고가 발생하여 총 12명이 출조했다. 서운하지만 참석한 회원들은 쾌적한 낚시가 가능해서인지 서운해 하지 않는다.


한국재발견에 외연도의 아름다운 경치와 역사가 소개됐다. 외연도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미리 쌓았다면 눈앞에 물고기만 보이고 외연도의 진가를 볼 수 없던 내 근시안이 이렇게 아쉽지는 않았을 텐데. 






홍원항에서 새벽에 출발한지 약 1시간 30분 가량 항해를 하는 동안 대부분 선실에서 잠을 청했다. 좁은 선실이지만 순식간에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하는 낚시가 인생인 선배님들(고기ㅇ, 김현ㅇ 등)이 감탄스럽다.  오늘 승선한 도깨비호 선장님은 그동안 보아왔던 낚시배 선장과는 다른 서비스정신으로 뭉친 프로선장님이시다. 출조를 마칠때까지 진심으로 철저히 챙겨주시며 다들 조과에 만족할 때 까지 열심히 이동하셨다. 10여년간 승선한 바다낚시배 선장님중에 진정성과 실력 모두 최고였다.  





외연도 출조는 비교적 선비 지출이 많아서 인지 인근 바다에 낚시배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언제부터인지 낚시배들이 연근해를 벗어 나지 않고 변죽만 올리고 있는게 현실이다. 일상에서 벗어나 큰 기대를 안고 온 출조인들에게 큰 씨알의 고기는 기대하기도 힘들고 실망하지 않을 정도의 조과를 올려주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아무리 유가상승이 원인이라고 하지만 서운했었다. 이번 출조는 제대로 바다낚시를 즐겨보자는 의견을 수용하여 여유가 많지 않는 동호회의 사정을 무시하고 비용 지출을 각오하고 마련한 자리이다.   





O.B. 라영주 선배님이 연질대로 대형 광어를 잡는 저력을 보여주셨는데, 조금 후에 양ㅇㅇ 회원이 대형 놀래미를 낚았다. 제주도에서는 어랭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45cm 가 넘는 놀래미는 처음 보았다. 다수의 기대속에 2시간 후에 횟감으로 사라졌다. 




이필열 회원이 낚은 우럭을 들어보였다. 외연도에는 이 정도 사이즈의 우럭이 대중적인 크기라고 한다. 부럽다.

 




예전에 타보았던 어설프게 고깃배를 개조한 낚시배가 아니다. 전동릴용 전원, 해수가 공급되는 쿨러, 낚시꽂이 등등 사용자 위주로 낚시배가 개조되었고 선장님은 개개인의 낚시대의 문제를 해결해 주셔서 줄이 엉켜도 부담이 없다. 




이 섬은 참돔 낚시가 잘 되는 변도라는 무인도이다. 양식장이 있고 갯바위 낚시는 금지되어 있다.





대형 삼식이(쏨뱅이)를 잡아 올린 양ㅇㅇ 회원 



곧바로 오늘의 우럭 최대어를 낚아올린 양ㅇㅇ 회원이다. 





낚시 경력 50년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김현태 회원이 우럭을 잡고 기뻐하고 있다. 감성돔 낚시를 즐기는데 서해 배낚시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고 하신다. 






배에서 먹는 회는 특별한 맛이다. 숙성한 회가 좋다고 하는 분도 있지만 즉석에서 잡은 회맛을 당해낼 수 있을 까 싶다. 광어, 우럭, 놀래미를 듬성듬성 썰어놓은 회를 먹고 있는 동호회원들. 종이컵에 따라서 마시는 소주는 이 때가 최고의 맛이고 해풍에 정신이 맑아져서 쉽게 취하지도 않는다.  






부자간의 대화가 많지 않은 시대인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낚시를 사랑하는 낚시인 중 한명인 조연찬 회원 부자는 낚시를 같이 다니는 가족애를 보여주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4짜 우럭을 걸어 올렸다. 역시 검객부자 답다. 





오늘의 조황이다. 이미 뱃속으로 사라진 고기가 절반이지만 이 것을 제외해도 제법 성과가 좋고 무엇보다도 씨알이 굵어서 대부분 만족스러운데 도깨비호 선장님은 자신의 배를 타고 성과가 좋지 않다고 미안해하신다. 

다들 선장님이 마음에 드신다고 다음에 또 이분하고 출조하자고 한다. 서천에서 도깨비팬션도 같이 운영하시는 선장님(010-5041-5525)께 감사드린다. 





     



작은 포구에는 어시장이 형성된다. 바다낚시를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어시장을 구경하며 수산물을 사는 재미도 상당하다. 홍원항에는 수산물시장이 잘 형성되어 있었다. 가격도 상당히 저렴하였고 양식을 자연산으로 속여서 파는 것 같지도 않았다. 혹시나 해서 도깨비호 선장님께 등대수산을 소개받아서 찾아갔는데 아주머니가 친절하고 연세가 많으신데도 충청도식 위트가 있으시다. 잡은 고기를 손질하면 킬로그램당 3천원인데, 자연산 대형광어를 손질해서 킬로그램당 2만원에 살 수 있다. 저녁 회식용으로 5킬로그램, 다른 분들은 가족회식용으로 광어를 사가지고 집으로 출발했다. 저녁회식은 늘 그러하듯이 유성 삼천포수산(042-824-8242)에서 홍원항 광어로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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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아산) 공세리성당

2013. 5. 26. 18:07


내포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의 앞자를 따서 유래한 명칭이다. 충청도는 과거 공청도로 불리기도 했는데 공청도의 공은 충청남도의 대표 도시인 공주를 지칭하고 있다. 공주는 과거 일제강점기에 충청남도청이 있던 도시였지만 1932년 충청남도청이 인근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충청남도의 주도권은 대전으로 옮겨져 온 것이다. 

80년 넘게 대전에 자리잡고 있던 충청남도청이 광역시로 분리된 대전에서 2012년 내포신도시라고 명칭된 홍성 홍북과 예산 삽교 경계지역으로 이전했다. 새롭게 조성되는 도시를 내포신도시로 명칭한 것은 충청남도의 역사적 의미를 살릴 수 있는 적절한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내포라는 명칭을 듣기는 했지만 익숙하지는 않다.

조선후기 실학자인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충청도에서는 내포(內浦)가  가장 좋다. 공주에서는 서북쪽으로 200여리쯤에 가야산이 있다. 서쪽은 큰 바다이고 북쪽은 경기도 바닷가 고을과 큰 못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동쪽은 큰 들판이고 남쪽은 오서산에 가려져 있는데 가야산에서부터 이어져 온맥으로 가야산의 앞 뒤에 있는 10고을을 내포라고 한다'라고 썼다.  여기에서 10고을은 홍성(홍주, 결성, 해미), 서산, 태안, 예산(덕산, 예산), 당진(신창, 면천, 당진) 이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보면 내포는 홍주목의 관활지인 충청남도 남부에서 경기 평택까지 통칭한다고 할 수 있다. 

내포에는 삽교호 방조제가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1979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공식방문지였던 삽교방조제는 과거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온천인 온양온천과 연계하여 신혼여행지로 유명했던 역사가 있다. 

내포평야에서 생산되는 막대한 미곡을 배경으로 예산에는 부자가 많았다고 한다.  일제시대인 1913년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최초의 지방은행인 호서은행이 예산에 설립된 것이 이를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대원군과 남연군묘 도굴사건

대원군의 부친이자 고종의 조부인 남연군의 묘는 원래 경기도 연천에 있었지만 풍수지리설에 심취한 흥선대원군이 야인시절 내포지역 예산군 덕산면으로 이장을 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흥선대원군의 젊은 시절 행적에 대해서는 파락호로 과장되어 알려져 있다.  기방출입을 하며 욕을 당하거나 '상갓집 개' 라고 비웃음 당하며 생활했다는 야사들이 우리로 하여금 마치 대원군을 한나라 유방의 젊은 시절과 비슷하게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근거가 부족하며 남아 있는 기록을 보면 그가 안동김씨 세력을 피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왕실의 대표성을 갖는 인물로서 꾸준히 왕가와 접촉이 있었고 재산이 적지 않았다고 알려지고 있다. 



흥선군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왕조이지만 자신이 권력을 가지고 왕가의 일족으로서 왕실의 권위를 되찾고 안동김씨와 노론세력의 독점적 권력과 횡포를 뒤집어 보고자 하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차분히 준비된 그의 노력이 철종의 죽음을 앞두고 신정왕후와의 정치적 결합을 성공시켜 고종을 즉위시킴으로써 조선후기 마지막 사회적 변혁을 시도해 보았으며 방심하고 있던 안동김씨 세력에게 최소한의 복수를 한 것이다. 

대원군이 정권을 잡고 취한 개혁정책들이 비록 대부분 실패하였지만 임오군란 때 구식군인들은 대원군을 구원자로 보았음은 그가 민중에게는 구원자로 보였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고종 5년에 발생한 독일상인 오페르트의 남연군 묘 도굴사건을 들어본 기억들이 있다. 총인원 140명이 참가한 국제도굴단이면 아마도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사건이다. 미국의 사주로 유대계 독일인 오페르트가 기획한 이 사건은 조선에서 이익을 거둘 목적으로  흥선대원군의 부친이자 고종의 조부인 남연군 묘를 도굴하여 시체와 부장품을 가지고 조선의 통상개방 협상용으로 사용하려고 한 저질 행각이었다. 이 사건은 주범 오페르트, 미국인 전주 젠킨스, 프랑스 선교사 페롱, 그리고 조선인, 백인, 말레이시아인 필리핀인 중국선원 등 총 140명의 대규모 도굴단이 구성되었는데, 묘지를 도굴하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고 한 일이 얼마나 추악한지는 논하지 않더라도 요즘의 대기업 약탈적 약자에 대한 횡포와 다를 게 없는 것 같다.  

이 사건의 출발은 국제도굴단이 행담도(서해안 행담도휴게소가 있는 그 섬)에 차이나호를 착륙시키면서 시작된다. 행담도가 이런 유래가 있는지는 모르고 있었는데 비교적 수심이 깊은 행담도에 착륙한 북독일국적의 차이나호는 그레타호를 부선으로 가지고 왔고 도굴범들은 부선을 타고 삽교천을 거슬러 올라가 덕산에 도착한 후 러시아군병으로 위장하여 남연군 묘를 파헤쳤다. 그러나 석회로 다져진 무덤의 특성과 묘지기등 주민들의 저항으로 도굴에 실패하고 도주한 사건이다. 이때 길안내를 맡은 조선인은 선교사의 말을 따른 천주교인이었는데 이 사건으로 쇄국정책이 강화되고 애꿎은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당했으니 그때나 지금이나 자본의 삵꾼 역활을 하는 사이비 종교인들의 폐해가 크다.

공세리성당

사랑은 추억을 타고 흘러가지만 우리는 대전역에서 KTX를 타고  25분, 천안아산역에 도착한다. 허무하게 짧은 시간이어서 잠시의 여유도 갇기 힘들다. 커피한잔을 호호 불어가며 도착한 천안아산역에서 생각해보니 아산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다. 과거 아산은 아산현충사가 대표하는 도시였는데 요즘 생각나는 것은 삼성아산공장, 선문대학교, 순천향대학교, 온양온천, 아산만방조제 정도이다. 

출장중에 근교의 명승지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번 출장중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알려져 있고 천주교 성지로 이름 높은 공세리성당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박세리도 아니고 공세리라는 명칭이 특이하기도 하고 정감이 가는데 아산출신 최ㅇㅇ님께서  내포지역(당시는 아산, 서산, 한산, 청주, 옥천, 보은회인 등 포함한 40개 마을)의 조세를 보관하던 공세창이 있던 자리여서 이런 명칭이 붙었다고 설명해 준다. 

충남지역에는 오래된 성당들이 많은 데 중국을 통한 서해안 으로의 천주교 전파가 그 이유인 것 같다. 김대건 신부가 내포(당진) 출신이라는 것은 이날 알았지만 기해박해에 순교한 김신부의 부친도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으며 김대건 신부와 같이 유학하였던 두번째 조선인 신부였던 최양업 신부도 홍주 다락골(지금의 청양 화성) 출신이라고 하니 충청남도 서쪽은 초기 천주교가 전파에 주도적인 역활을 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충청도에서는 두번째로 오래된 성당인 공세리성당은 본래 '공세리공소'였던 곳을 신자가 급증하자 1895년 6월 드비즈신부가 공세리로 부임하면서 본당으로 승격, 공세리천주교회가 설립되었다.  1922년 현재의 고딕양식의 서양식 성당이 완성되었고 그뒤로 강당, 별관, 기타 증축 등이 이루어 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주차장에서 언덕 위 성당으로 올라가는 길이 운치있다.




                    ▲ 성당에는 300년이 넘는 나이의 보호수가 많이 있어서 성당을 편안하게 감싸준다. 


                               ▲ 고딕양식의 본당



                 ▲ 내포의 평야지대와 멀리 아산만이 보인다

.


















                  ▲ 박씨 순교자 3형제(박의서, 원서, 익서)를 추모하는 비




                   ▲ 32인의 순교자 현양비외 기념부조물






                                       ▲ 성지순례를 오신 어르신들이 많았다.


언덕위에 위치한 공세리성당은 멀리서 보면 나무들 사이에 가려져 있지만 운치가 있고 소박함과 아름다움이 함께 느껴지는 곳이다. 성당에 진입하기 전까지는 충청도 시골 모습인데 주차장부터는 너무 멋진 성당이 나타난다. 사실 공세리성당은 예전부터 드라마나 CF에 자주 배경이 되었던 곳이라고 하며 김태희가 주연한 아이리스도 이곳에서 촬영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성당의 모습보다는 조선시대부터 한국 천주교의 전파에 중요한 역활을 하였으며 많은 순교자들의 희생이 있는 천주교 성지인 공세리성당은 우리에게 차분안 휴식을 안겨주는 산소같은 곳이다. 평일이었는데도 성지순례라고 표시된 관광차들이 많이 보이고 안드레아, 마리아 등등의 이름표를 붙인 어르신들이 많이 방문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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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대회

조달청 본청은 대전에 있는 정부대전청사 3동에 있다. 기관의 역사는 약 60년이 넘었으며 전국적으로 직원의 수는 약 1천명이고 본청에는 약 400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사내 복지의 일환으로 다양한 동호회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최근 젊은 직원들이 많이 입사하면서 당구, 야구, 배드민턴, 탁구 등 스포츠 동호회가 활성화 되었다. 그러나 조달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사내 동호회는 낚시동호회와 산악회이다. 두 동호회 모두 약 40년이 넘는 역사가 있지만, 민물낚시에 대한 인기가 없어지면서 우리 낚시동호회도 회원수 감소를 걱정해야 할 위기에 처해있다. 전국의 호수가 오염되고 어족자원의 남획으로 민물에 붕어가 사라지니 조사들의 흥미가 반감하고 젊은 층은 루어낚시에 관심을 갖다보니 민물낚시를 기간으로 하는 우리 낚시동호회는 이제 변방으로 밀리는 것 같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우리 청 낚시동호회원들은 양어장낚시, 경기낚시 등으로 불리는 낚시대회를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연과 동화되는 낚시를 추구하는데 덕분에 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문제점을 노출하지만 큰 불만들은 없다.  전국의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참가하는 제11회 중앙부처대항 전국공무원낚시대회가 공주 자연농원 낚시터에서 개최되었다. 자연농원낚시터는 경기낚시 대회가 많이 열리는 곳인데 입질이 까다로워서 일반 동호인들에게는 인기가 없는 곳이다. 

항상 전년도 우승 팀이 대회를 개최하는 룰에 따라서 올해는 전년도 우승팀인 농촌진흥청이 수고를 해주었다. 작년에는 그 전년도 대회에서 우승을 한 조달청에서 주최하여 당진시 전대리지에서 개최하였는데 이철환 당진시장님이 적극 협조하여 주셨고 당진시 공무원들도 휴일에 나오셔서 도움을 주셔서 고맙고도 미안했었다. 당진시의 도움을 기억하는 많은 분들이 계시니 다른 일에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낚시대회는 안전행정부의 재정지원이 이루어지는데 협조가 힘들어서 우승팀은 개최하면서 1등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행사지원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조달청 낚시동호회

조달청의 조가 잡을 조라고 우기는 분이 있다. 물건조달을 해야하는데 물고기만 잡는다고 우스개 소리를 하신다. 최근에 뿌리없는 동호회가 장족의 발전을 해서 많은 회원을 확보하고 있지만 대부분 성적을 다투는 리그전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낚시동호회는 물고기와 나와의 대화를 통해서 삶을 즐기는 행복한 동호회이다. 연령대가 높고 젊은 직원들이 부족하지만 다들 순수함을 가지고 있어서 인지, 이기적인 직원은 참여하지 않는다. 

이번 대회는 너무 급작스럽게 개최통보가 와서인지 전체적으로 참여자가 적다. 우리청에서는 오세홍, 조연찬, 고기철, 윤성원, 김성찬, 김한두, 이남주, 이강율, 최동진, 그리고 내가 출전했다.  


물고기는 다 어디로 갔지

경험적으로 경기낚시는 자리배정이 당일 성과의 핵심 포인트이다. 이번 대회에서 우리청은 자리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입질 한 번 받지 못한 회원이 3명이나 된다. 전체적으로 몰황이기도 하고 너무 덥고 자리별 편차도 심해서인지 대회 중간에 다들 지쳐버렸다. 

 


             ▲일단 아침부터 먹고 시작합시다.

 

             ▲자리배정을 했다. 우리청 동호회는 이런 방식의 낚시는 선호하지 않는다.


             ▲과거 같은 장소에서 열렸던 대회에서 개인 2위를 차지했던 최동진회원. 

               우리나라에 가장 낚시를 사랑하는 사람중의 한 명이다.


 
       ▲이번에 진급하시는 파평윤씨 윤성원 회원. 낚시 채비를 다루는 실력이 아트의 경지에 도달했다.
           물론 채비의 아티스트가 낚는 것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전 회장이신 오세홍 회원. 항상 넉넉하신 마음으로 동회회를 이끌어 주신다.  

            ▲낚시에 대한 애정으로 항상 행사를 빛내주는 이남주 회원.

            ▲품질관리단에서 참여하신 김한두회원. 요즘은 내림낚시를 주로 한다고...  


            ▲이름부터 낚시를 할 수 밖에 없는 고기 철 회원.  


            ▲이날 우리 청에서 가장 좋은 실적을 거둔 김성찬 회원. 


            ▲작은 체구이지만 낚시에서는 검객으로 불리는 조연찬 회원


            ▲말없이 세월을 낚으시는 이강율회원은 시작과 동시에 붕어를 낚었다. 


후기

농진청에서 준비를 열심히 했지만 날씨가 너무 더웠고 급하게 준비해서인지 대회진행이 순조롭지 않았 보였다. 사회자가 낚시대회를 이벤트식으로 진행하면서 경기중간에 경품을 주는 이벤트를 마련한 것이 오히려 경망스럽고 가볍게 보여서인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준 것 같다. 

이런 대회는 개최자에게 항상 고민이다. 민물낚시의 기본은 밤낚시인데 대낮에 하는 낚시 대회를 노지에서 열게되면 거의 고기를 잡을 수 없고 관리지에서 개최하면 낚시의 맛을 잃게 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나는 이번에 입질 한번 받고 소식이 없다.

 










과거 보건복지부에서 개최한 대회(이천 각평지)는 당시 유시민 장관이 출전했었고(이분이 낚시광인것은 이때 알았다.) 몇년 전 예당지 대회에서는 대회시작할 때는 탤런트 여운계씨가 사망소식이 화제가 되었는데 정오무렵에 노무현 대통령이 사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신분이 공무원들인 참석자들이 다들 당황했었던 기억이 있다(이때 조달청이 우승했다).  

11년의 역사가 쌓인 중앙부처대항 공무원낚시대회가 연합회 체제로 변신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대부분 찬성하는 분위기 이고 우리 청도 적극 찬성이다. 매년 참석해보면 예전에 출전하셨던 낮익은 분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퇴직하신 경우이다. 퇴직자까지 초빙해서 대회를 열고 젊은 사람들도 적극 참여하는 축제가 되도록 모든 부처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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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여행의 백미는 이화원(이허위안)


두 남동생이 중국에 정착한 지 15년이고, 덕분에 중국방문이 일상화 되었다. 

중국은 방문이 거듭 될 수록 진한 매력이 있다.  중국 특유의 암모니아 냄새가 있지만 근대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중심이었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전지역이 보물같은 곳이다.


중국 전역을 여행하는 목표는 약 10년 전 부터이다.  의사소통이 어렵고 정보부족으로 일단 가까운 곳부터 쉽게 시작하는 방법을 택했다. 해안도시부터 내륙으로 예정을 해는데 방대한 지역의 여행은 많은 경비와 시간이 소모되므로, 직장에 매여있는 현실에 맞게 매년 1, 2차례 동북부부터 차근차근 내려오고 있다.


2007년 초여름 상하이에서 김ㅇㅇ님을 지인의 소개로 만났었다.

모 그룹사의 상하이지사장을 지내신 분인데,  회사를 사직하시고 상하이에서 개인사업을 하시면서 해박한 중국역사의 지식과 달변을 바탕으로 약 20년간 중국 여행온 분들의 가이드를 많이 해주셨다고 한다.

이 분 도움으로 중국 근대와 현대가 중첩된 상하이의 진수만을 즐길 수 있었고, 중국 정통 삭스핀(게살스프 아니고)을 제대로 맛보았다(처음 먹는 사람들은 비린 맛에 제대로 먹지 못했다). 

 

상하이에서 2시간 정도 고속도로를 질주하면 중국인들이 上有天堂, 下有蘇杭 (하늘엔 천당, 땅엔 소주, 항주)라고 부르는 소주(쑤저우)에 갈 수 있다. 요즘도 중국인들은 쑤저우에서 태어나 항저우에서 사는 것이 인간의 행복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뇐다고 하는데, 상하이 여행중에 동방명주에만 갈 수 는 없는 일이어서 쑤저우를 관광하면서 가이드를 맡아주신 김ㅇㅇ님의 적극 추천으로 중국 정원의 자존심으로서 피서산장, 유원, 이화원과 함께 중국 4대 명원 중 하나인 졸정원을 관람했다.


졸정원이라는 이름은 '한거부라는 시의 한 대목인 '졸자지위정'에서 따온 것으로서 '어리석은 자가 정치를 하고 있다'는 뜻으로 자신을 실각시킨 베이징 권세가들을 비꼬는 말이다. 졸정원은 일본 정원만큼 인위적이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의 편안한 스타일도 아니다. 

중국 정원의 3대 특징은 수목, 물, 암석이라고 한다. 졸정원은 이중에서 물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것이 특징으로서 정원의 절반이 호수로 이루어 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6월의 남부지방의 습한더위와 엄청난 수의 중국관광객들 속에서 정신도 없었지만 졸정원에서 감탄사를 남발하는 중국인들이 많이 보였다.


졸정원을 나와 한산사로 이동하면서 4대 명원으로 꼽히기에는 아니올시다라는 생각에 가장 중국다운 유적지를 물었을 때 가이드 김ㅇㅇ 님은 중국미의 정수를 보려면 천안문, 자금성, 만리장성이 아닌 이화원이라고 단언했다.

만리장성보다는 이화원이 중국을 대표하는 유적지라는 것이 의외였는데, 서태후가 애용했던 황실 별궁과 정원으로 알려져 있는 이화원을 그해 가을 중국출장중에 반나절의 시간을 활용해서 가 볼 수 있었다.

 

금나라 때인 12세기 초에 금나라의 행궁으로 처음 조성된 이화원은 엄밀히 본다면 만주족의 유적지이다. 

원나라 쿠빌라이 칸이 북경의 용수공급을 개선하기 위하여 곤명호를 확장하였고, 1750년 청나라 건륭제 때 대폭 확장되어 실질적인 청나라의 황실정원이 되면서 청의원으로 불렸다. 

2차 아편전쟁(1860년) 당시 프랑스와 영국이 약탈하고 파괴하였으나 이후 서태후가 실권을 쥐고 있던 1886년 재건되면서 이허위안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당시 서태후는 자신의 환갑 축하연을 베풀기 위하여 중국 해군 북양함대의 자금 은 30만냥을 유용해서 이화원을 재건하였고 그 때문에 청나라가 1894년 청·일전쟁에서 패배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과장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청나라 말기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주로 이곳에서 수렴청정을 했던 서태후는 일시적인 피서와 요양 목적으로 건설되었던 이허위안에 각종 전각과 사원을 추가해 본격적인 국사를 볼 수 있는 궁전 형태로 변모시켰다.

1990년 의화단의 난으로 이화원이 파괴되었으나 1902년 서태후에 의해서 다시 재건되었다.

 

이화원 입구에서 그 거대함에 놀랐는데, 총면적의 3/4를 차지하는 인공호수인 쿤밍호(昆明湖)는 인공으로 만들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광대한 크기여서 바다처럼 보인다. 항저우(杭州)에 있는 시호(西湖)을 모방하였다는데 시호보다 더 화려하다.

 

 

거대한 인공호수와 인공산, 아름다운 건물

 

청조의 패망하고 1924년 이화원은 공원으로 바뀌었다. 90년이 더 지난 후에 이화원 관광을 하게 되었지만 그 당시의 청조의 마지막과 서태후의 포스를 연상해보면서 화려한 중국미를 볼 수 있는 것은 이화원 여행의 맛이다.

하루 안에 다 볼 수 있을 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화원 입구에서 오른편으로 이화원 관광이 시작된다. 만수산(완셔우산(萬壽山))은 쿤밍호를 조성할 때 파낸 흙을 쌓아 만든 인공산인데 높이가 60m라고 한다.

건축물과 조형물의 화려함에 감탄을 하게 되지만 이 멋진 유적지가 서태후를 위한 그녀만의 공간이었다고 하니 유럽의 절대군주 루이 14세는 동양의 서태후를 누님으로 모셔야 할 것 같다.

만수산 정상에 있는 불당 즈후웨이하이(智慧海)에서는 이허위안 전체를 조망할 수 있고, 서태후가 정사를 보았다는 낙수당(런서우디엔, 樂壽堂), 서태후만을 위한 중국 최대의 경극극장이 있는 덕화원(더허위안(德和園)), 관세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는 파이윈디엔(排云殿) 등이 유명하다.

 

이화원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건축물은 창랑(長廊)이다. 길이 778m, 273칸으로 중국에서 가장 크고 긴 복도인 창랑은 중국 고전에 나오는 장면들을 묘사한 1만 4천여점의 회화가 천장과 벽에 그려져 있어 ‘중국 최대의 야외 미술관’으로 불린다.

 

베이징에 가면 가장 먼저 가보아야 하는 장소는 만리장성도 아니고 자금성도 아닌 이화원이다. 중국여행을 한다면 중국문화의 진수를 볼 수 있는 이화원에서 중국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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