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사'는 충청도 영동 양산에 있다.


이번 여름 휴가는 여러 사정으로 짧게 보낼 수 밖에는 없는 사정이다. 

근 몇년간 안구정화 한다며 해운대 인파속에 섞여보았는데, 이번 여름 휴가는 직장 동료들의 교육일정과 중복되어서 7월을 포기하고, 8월 1, 2일 양일을 이용해서 집에서 밀린 책정리를 해 보았다.

 

책만 보면 좋았는데, 책장사 책과 양서를 구분하는데 근 10년이 걸렸다. 분류별 주제를 정하여 선별된 장서 3,000권이면 개인서고를 구성할 수 있다는데 아직 역량이 부족하다. 지질이 나쁜 오래된 책을 보면 눈 건강에 좋을리도 없지만 하루종일 재채기를 하고 책에서 뿜어나오는 냄새도 집 환경에는 좋지 않다. 


영국사는 1,000년 넘는 역사가 있는 고찰로서 충북의 남부 3군중에서 보은의 법주사, 옥천의 용암사와 함께 영동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영국사라는 이름때문에 잉글랜드를 연상하지만 충북 영동 양산면에 있다.  대전에서는 영동IC에서 접근하는 것 보다 옥천에서 접근하는게 빠른데 옥천 이원면의 묘목시장에서 멀지 않다. 대부분 시골풍경이 논밭에 작물이 심어져 있는데 옥천 이원면은 우리나라 최대 묘목단지 답게 도로주변 논밭에 각종 묘목들이 가득하고, 덕분에 풍경이 시원하고 목가적이다.   


일부 비포장도로와 양면통행이 불가한 좁은 산길이 산중고찰에 대한 운치를 돋게 해주기도 하지만 지금 공사중인 포장이 빨리 완공되었으면 한다. 누교지라는 저수지를 지나 계곡을 쫒으면 넓은 주차장이 보인다. 주차장이 상당히 넓고 잘 조성되어 있다. 물론 주차료와 입장료도 없다. 




충청도를 대표하는 명산인 계룡산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세가 수려하고 여성스러운 자태가 있다. 영국사 주변은 마치 계룡산 초입부처럼 약간은 붉은 빛이 도는 화강암으로 된 고봉들로 둘러쌓여 있으며 고목들이 주변을 감싸고 있다. 유명 사찰들은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되어 있고 사찰 앞은 난전 분위기를 띄우고 있고 무개념 관광객들로 수도분위기를 찾기 어려운데 비하여 '영국사'에서 받는 첫 느낌은 사찰다운 사찰이다. 



만세루를 오르는 계단은 투박하고 세월의 때를 간직했지만 화강암을 기계절삭해서 만든 계단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연스러움이 있다. 손으로 가공하고 세월이 닦아놓은 자연스러움은 편안함을 선사한다. 






주차장에서 만세루를 통해서 대웅전으로 올라 갈 수 있다. 만세루에서 보이는 대웅전이 약간 작게 보인다. 

영국사라는 명칭의 기원이 국태민안을 뜻한다고 적혀있다. 과감하게 호국불교를 내세우는 사찰보다는 부처님 말씀에 가까울 것 같다.   









상층부가 허전해 보이는 삼층석탑이다. 화강암을 사용한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석탑이다. 아마 탑의 재료인 호강암은 주변에서 채취했을 것 같다.  석탑의 최고는 정림사지 5층 석탑이 아닐까...  





우리민족의 전통종교인 샤며니즘과 중국에서 수입된 불교가 결합하여 탄생한 산신각이다. 복을 구하는 것은 인간이 탐닉하는 목표중의 절대적인 가치이기에 민생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형태로 발전했다. 






아득히 먼 서쪽에 있다는 극락세계를 법당으로 옮긴 것이 극락보전이다. 대부분 절에서 대웅전 주변에 있다고 한다. 이 곳에는 서방정토의 주인이 아미타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평소에 무심코 둘러보던 곳인데 이 곳도 각종 규칙이 있어서 내부는 극락정토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하니 사전에 기초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보면서 느낄 수 있다. 





         ▲ 반야와 백구


         ▲ 참선 장소여서 유일하게 출입이 통제되는 암.



영국사 주변


주변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가까운 거리에 부도와 탑이 있다. 아무리 천년고찰이어도 스님들이 부지런하지 않으면 이렇게 정숙하게 유지되기 힘들텐데 이 날도 스님 한 분이 열심히 대웅전을 걸레질 하고 계셨다. 












 


아이에게 돌탑을 쌓고 소원을 빌어보라고 했다. 아이의 소원은 수학공부 잘하게 해주세요.








영국사 주차장을 나오면 입구에 민가가 몇채 있다. 아마도 절과 공존하는 장소인 것 같다. 오랜만에 명산고찰을 보았다. 이런 수준 높은 사찰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은 충청북도 영동이라는 위치가 주 원인일 것이다. 어쩌면 그 덕분에 잘 보존되었겠지만, 혹시 시간이 된다면 영국사를 들러보는 것도 좋은 여행의 추억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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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 용대리, 군축교, 신남



    양희은의 한계령(하덕규 작사/작곡)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80년대 말 까지도 군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에게 강원도 인제 그중에서도 원통은 기피지역 이었다. 오죽하면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라는 유행어가 있기도 했는데, 기억을 돌이켜보면 인제보다는 신병들을 배를 태워서 소양호로 이동시켰던 양구의 2사단이 힘든 곳이었다. 


당시에 오지였던 원통은 이번에 44번 국도로 내려오면서 보니 오히려 인제읍보다 커 보였다. 원통 초입에 12사단 을지부대 사령부가 있었다. 12사단은 고 노무현대통령이 68년부터 34개월간 사병으로 군생활을 한 부대이다.  인제 신남에 있는 보급부대 경리였던 나는 부대 자금이나 사병봉급을 원통의 12사단 사령부에서 수령하는 사정으로 수시로 12사단에 출입했었는데 막상 이번에 보니 부대입구를 찾을 수 가 없었다. 우회도로가 생긴 탓도 있지만 지형지물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변해가는 가 보다.

 

우리부대는 38선 아래 신남면에 있었다. 44번 국도가 위병소 앞으로 지나가는 교통이 비교적 좋은 곳이었고 여름이면 설악산으로 강릉으로 가는 차들이 줄을 이어서 외롭지 않았다. 부대에서 인제까지는 차편으로 20분정도의 거리였는데, 부대에서 신남면소재지까지는 약 20분 정도 걸어다녔고, 신남면에서 인제읍까지는 지나가는 군용트럭을 얻어 타거나 시내버스로 가곤 했었다. 가끔은 인제에 미치기 전에 다른 곳으로 가는 군용 차량을 타면 인제까지 걸어가곤 했었다.

 

소양강 (구)군축교 아래는 항상 물이 차 있지는 않아서 평소에는 푸른 초원지대로 변한다. 그 초원에서 군부대들이 야영 훈련을 하곤 했는데 이등병때인 90년 초여름에 야외에서 훈련이라는 것을 해보면서 야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때 사진에 있는 김광락 대위는 지금은 대령으로 근무하고 있고 군수품 계약관련으로 연락이 된다.

그때 훈련중에 첫날 초원을 가로지르며 갑자기 나타난 노루가 수백명 군인들을 보고 놀라서 달아났었다. 모두 소리지르고 노루를 따라 달리던 그때 그사람들이 생각난다. 군축교밑은 최근에는 루어낚시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90년에는 설악산 백담사에 전두환씨 부부가 유배중이었다. 90년 가을에 인제로 면회를 오신 부모님하고 백담사에서 전씨부부하고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나는데 찾아보니 전씨부부하고 같이 찍은 사진이 남아있다.

90년 11월 초 소양강 군축교에서 대형버스추락사고가 일어났고,  당시 21명이 사망한 사고는 백담사에 유배중인 전두환씨 부부를 만나고 서울로 귀가하던 대구공고 재경후배부부들이 탄 관광버스가 군축교 아래로 추락하면서 발생했는데,  이 관광버스는 무자격 운전기사의 불법영업임이 밝혀졌고 피해를 당한 분들은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해서 관광버스의 불법운행 실태를 일대 정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고 다음날  인제읍에 있는 국민은행에 가면서,  군축교 사고를현장을 보려고  일부러 버스를 타지 않고 인제읍까지 걸어갔는데 군축교 오른 편에 빠져있는 버스를 볼 수 있었다. 시신은 이미 수습해서 보이지 않았고 버스는 물에 대부분 잠겨있었는데 유실물이 없도록 그물로 버스주변을 감싸놓았었다. 물이 너무 맑고 진한색이서 지금도 기억이 난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44번 국도를 타고 운전하면서 차창 밖으로 내가 가장 젊음이 넘쳤던 시절에 군 생활을 한 작은 부대를 다시 보니 옛 기억이 난다.




추억이 많은 하조대


어제 밤 여행 멤버들 모두 백사장을 걷지 않으면 후회 할 것 같은 마음이었다. 

밤바다 하조대 해수욕장 백사장을 거닐었는데,  몇년 전 대전 토인회 멤버들이 강원도 여행을 했을 때, 이곳을 들렀고, 인하대 이동원교수님도 젊은시절 하조대의 추억을 기억했는데, 중소기업청 윤영희위원장님도 젊은 시절의 좋은 기억이 남아 있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하조대는 추억을 남기는 곳인가 보다.

 

아침식사를 간단히 하고 해수욕장이 아닌 하조대(정자)로 이동했다.  나는 충청도에 사는 지리적 여건으로 주로 서해바다를 찾지만 서해는 동해의 절경을 따라올 수 없음이다. 동해의 절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이곳 하조대는 멋진 백색 등대와 함께 풍경이 아름답다.











약 30분 정도면 하조대를 둘러 볼 수 있다. 주차장이 부족하여 차량이 밀리면 주차난이 있겠지만 해수욕장만 보고 가기에는 동해의 풍광과 바닷바람이 주는 기쁨이 크다. 





                   ▲ 오색약수에 물이 없다.





왜 자연용출수를 주로 약수라고 부르는 것일까!  약이 되는 물이 있다면 약국 병원은 어떻게 하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약수는 강원도의 오색약수와 충청도의 초정약수라고 할 수 있다. 약수가 무슨 효과를 볼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닌 것을 다들 알고 있다. 다만 그 유래와 독특한 맛을 즐기는 사람들의 만족감이 심신을 맑게 해준다. 


1990년이다.  인제에서 군생활 중에 부모님하고 함께 오색약수에 왔을 때는 물이 이렇게 부족하지는 않았던 기억이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약수는 고갈되어 용출량이 너무 적어서 한 모금 마시기에도 부족하였고 물을 떠가기에는 줄을 서있는 사람들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뭐든지 고갈되는 시대인데 오색약수도 고갈되는 것인지 아니면 자연현상인지 약수터의 명운이 달려있는 것 같다.

약수터 사방에 케이블카를 설치하자는 플랭카드를 붙여 놓았는데 자연을 망치는 케이블카보다는 약수의 수량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게 먼저일 것 같다. 오색약수터에 오색약수는 없다.







오색지구에 태풍에 의한 수해가 발생하여 현재는 대부분 재정비를 하였다. 비교적 무난하지만 인공적인 복구가 자연스러움과 어울리지 않아서 통상적인 관광지로 전락하는 것 같다.  새로운게 새로운게 아니고 낡은게 낡은 것이 아니다. 







관광지에는 대부부 산채요리를 하는 식당들이 많다. 호객행위는 맘에 들지 않지만 정갈한 데를 찾다가 소개를 받아서 찾아간 식당은 정갈한 음식솜씨와 주인 내외의 친철함이 알려진 곳이었는데 거의 먹지 못했다. 

대부분의 음식에 설탕을 넣었다. 담백한 산속음식을 기대했는데 단맛은 어울리지 않는다. 조리하시는 분이 음식에 설탕을 사용하는 습관이 있으면 쉽게 변하지 않는다. 너무 짜거나 설탕을 사용하는 식당은 피하는데 그래서 식당 소개는 하지 않기로 하고, 나의 20대 초반의 기억을 묻어 놓은 인제로 출발....   





주문진은 항구다


주문진(注文津)은 강릉시에 속해있으며 1940년 읍으로 승격했다고 한다. 대공연 일행들이 낙산사를 둘러보고 양양이나 속초보다는 주문진을 가는 것으로 합의하고 곧장 주문진항으로 달렸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동해의 항구답게 포구가 크지는 않지만 아담하게 잘 발달되어 있다. 




                   ▲ 우리나라 어느 항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수협 냉동창고



                   ▲ 주문진에서 조금만 노력한다면 항을 예쁘게 정비할 수 있을 것 같다.


                   ▲ 방실이인줄 알았는데 밤실이 


                   ▲ 동해는 참문어가 많이 보인다.


                   ▲ 내륙지방 사람들도 좋아하는 골뱅이


                   ▲ 수산시장 안내를 받고 있다




                   ▲ 동해안답게 문어, 오징어, 가자미 등이 보인다.  도루묵도 보이는데 알이 없다.


대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대게는 피하고 싶었는데 나 빼고는 다들 좋아한다. 가격은 저렴하지만 잘 골라서 먹어야 겠다. 여름보다는 겨울이 맛이 좋을 것 같고..





양양에는 낙산사가 있다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직장에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을 경험할 때면 일상을 탈출하고 싶어진다. 

그 상식에 반하는 일이 직원들간의 갈등이고 잘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욕심이면 다 덮고 사라지고 싶다. 

며칠간 동료들의 이기적 행동을 보면서 높아진 실망감을 피하려고 휴가를 내고 대전공무원연합의 강원도 여행겸 워크숍에 동참했다.


대전에서 가장 먼 곳은 제주도인데 접근이 어려운 여건상 이번 여행은 내륙에서 가장 원거리인 강원도 그것도 양양이나 고성이니 마음을 다스리기에는 적합한 여행지이다. 


90~92년 강원도 인제에서 군생활을 했던 기억도 새록새록 올라오고 옛 기억을 되집어 보는 추억의 여행..   


차를 렌트했는데 청사까지 배달을 해준다. 8명이 탑승하고 고속도로로 4시간 정도 이동하여 비교적 쉽게 낙산사에 도착했다. 86년 3월 대덕고 수학여행때 처음 왔는데, 당시는 대전에 남녀공학 고등학교가 많지 않던 시절이어서 남녀 학생들이 함께 가는 수학여행이 드물었고 재미도 있었다. 그래서 인지 4개반 약 230명이 어울렸던 추운 3월의 수학여행은 추워도 춥지 않았다. 







              ▲ 동해는 물이 맑고 차다. 서해에서의 바다는 흙탕물과 갯벌인데 이 곳은 바위와 모래 그리고 철조망. 



              ▲ 홍련암






화강암 구조물은 가장 한국적이다. 이 난간 구조물은 낙산사와 어울리지 않아서 자세히 보니 모서리를 V컷 가공처리 했다.  

도로경계석도 V컷은 중국수입품에서만 나타나는데 이런 문화공간은 인간의 혼이 담겨있는 자연스러움이 필요하고 이런 주변구조물도 세세한 신경을 기울여서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든다.



              ▲ 멀리 보이는 풍경은 쏠비치


              ▲ 2005년 산불로 유실되었다가 복원된 원통보전


인제에서 군복무하던 90년 가을에 부모님이 면회를 오셨을 때, 백담사와 낙산사를 구경했었다. 당시 백담사에는 전두환 이순자 부부가 유배중이었고, 이들 부부를 보기 위하여 전국의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들었고 나도 얼떨결에 비닐하우스안에서 애국하자는 강연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2005년 강원지방의 대화재로 낙산사가 거의 전소되는 피해가 있었다. 화마의 피해는 엄청난 문화재의 손실이 있었고 몇년 후 에 토인회회원들하고 낙산사를 방문했을 때 아직 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었는데 이번에 방문해보니 거의 복구가 되었고 아늑함도 느낄 수 있었다. 









              ▲ 관음지와 보타각, 보타전


우리나라 최고의 건축가이신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신 절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유명 고찰에는 의상대사께사 창건했다는 기록을 적어 놓았는데 의상대사는 노래하는 스님보다 더 바쁘셨겠다. 많은 사찰들이 신라시대를 기원으로 하여 고승들이 창건한 역사를 내세우고 있지만 현실을 벗어난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낙산사는 신라시대를 기원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빼어난 풍광과 아름다움을 가진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을 다스리고 가족애를 느끼기에는 최고의 장소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