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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화

2013. 3. 31. 18:00


피아노를 싣고 피난을 간 이원숙 여사

2011년 정경화명화명훈 남매의 모친인 이원숙여사가 작고하였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여사는 함경남도 원산출신의 인텔리 여성으로서, 유명한 원산 루시여고를 거쳐 배화여고와 이화여전 가사과를 졸업한 뒤 여성으로는 드물게 일본에서 유학을 하셨다. 시대를 앞서가신 분으로서 한국전쟁때 트럭을 구하여 피아노를 싣고 피난을 간 일화는 유명하다.

정경화는 동양인 최초의 클래식계의 스타이다. 원래 피아노를 배웠으나 바이올린에 뛰어난 재능을 나타내었으며 1960년 12세 때 미국 줄리어드음악학교에 입학하여, 그 유명한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린 교육자 중 한 명인 이반 갈라미안 문하에서 사사했다.

이원숙여사는 자녀들의 음악교육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1962년 전 가족과 함께 도미하였다. 그녀는 강한 생활력으로 워싱턴과 시애틀에서 한식당 ‘코리아 하우스’를 운영하였으며 7남매에게 악기 연주를 가르쳤다. 지휘자인 정명훈, 첼로연주자이자 음악감독인 정명화와 바이올린의 정경화 남매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레빈트릿콩쿠르

2001년 사망한 미국의 유대계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은 미국 음악계의 대부로서 ‘아메리카-이스라엘 문화재단’을 통해 유대인 음악인의 지원에 온 힘을 기울였다.

1967년 줄리어드음악학교의 이반 갈리미언의 동갑내기 제자인 정경화와 유대인 핀커스 쥬커만은 레빈트릿콩쿠르에서 일전을 겨루었다. 클래식음악계가 사실상 유대인들의 앞마당인 상황에서 당시 콩쿠르는 아이작 스턴이 심사위원장이었기 때문에 유대인인 주커만이 우승자로 내정되어 있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당시 19살의 정경화는 신들린 연주로 대부분의 심사위원들이 우승자로 정경화를 추천하였으나, 연주도중 활을 놓치는 실수를 범한 핀커스 쥬커만을 우승시키기 위하여 위원장인 아이작 스턴이 재연주를 권유하여 사상초유의 공동우승이라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정경화는 1970년 바이올린 솔리스트가 갑작스럽게 결장을 하자 런던에서 앙드레 프레빈 지휘의 런던 교향악단을 반주로 하여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 연주하게 되었다. 이것이 대단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켜, 유럽 각지의 오케스트라와 미국 등지에서 그녀를 일약 인기 바이올리니스트로 만들었다. 


                                           ▲ 누구일까?


                                           ▲ 원조 이은미





                             ▲ 조미미여사


                                     ▲ 앙드레프레빈과 공항에서..


    



















 

Johanna Martzy (요한나 마르치)

요한나 마르치는 루마니아 태생의 헝가리 바이올리니스트이다. 마르치는 섬세하고 기품있는 연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녀는 지네트 느뵈, 이다 헨델 등과 함께 1950년을 전후해서 연주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6세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1932년에는 예뇌 후바이(Jeno Hubay,1858-1937)가 원장으로 있던 음악원에 입학하여 후바이가 사망한 1937년까지 그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후바이는 마르치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바이올린 연주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는데, 그의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13세에 치른 공연이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리스트의 친구인 명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를 기념한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았고, 23세에는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서 상위 입상하였다. 이 무렵부터 유럽과 미국 공연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1964년 존 프리차드(John Prichard)가 지휘하는 런던 필과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런던 연주회를 마쳤을 때 '타임즈'는 그녀의 연주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마르치는 빼어난 주법을 구사하는 위대한 연주자다. 그녀는 서정적인 음악에 따뜻한 감성을 불어넣을 때나 역동적인 부분에 힘을 불어넣을 때,언제나 전력을 다해 연주한다. 첫 번째 악장의 트리플-스토핑(triple stopping)부분은 번득이는 힘을 담고 있었다. G현과 D현으로부터 그가 뽑아내는 톤의 정열적인 긴장감은 정말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음악이 진행되면서 고요한 부분을 흔치 않은 고귀함으로 연주할 수 있는 것은 음악적인 기질이 폭넓기 때문이다. 가끔 잘못된 음을 짚기도 하지만 재치있게 처리를 해내고 있으니 도대체 누가 불평을 하겠는가? 느린 아다지오 악장의 탁월함은 어떤가. 고음부에는 마르치만의 비단결같은 순결함이 있고 격조 높은 부분에는 잘 통제된 감정과 유연함이 있었다. 마지막 악장에서 머뭇거리듯 연주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곧 제맛을 되찾았다. 주제부에는 힘찬 리듬을 담아냈고,옥타브 주제의 가락은 힘차고 믿음직스러웠으며 코다의 16분음표에서는 발랄함을 보여주었다."]

 

요한나 마르치는 새털같은 따스한 감성, 고전주의적인 양식미가 넘치는 매력적인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남긴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는 기교의 과시없이 정신적 깊이로 바흐를 풀어낸 그녀의 명연중의 명연이다. 마르치는 1979년 8월 13일, 54세의 많지 않은 나이에 취리히의 한 병원에서 암으로 사망했다. (예스24에서 인용)



 

   ▲ 멘델스존과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 음반이다. 우아하면서 갸냘픈 연주에 빠져든다. 아끼는 음반목록 1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