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여행의 백미는 이화원(이허위안)


두 남동생이 중국에 정착한 지 15년이고, 덕분에 중국방문이 일상화 되었다. 

중국은 방문이 거듭 될 수록 진한 매력이 있다.  중국 특유의 암모니아 냄새가 있지만 근대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중심이었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전지역이 보물같은 곳이다.


중국 전역을 여행하는 목표는 약 10년 전 부터이다.  의사소통이 어렵고 정보부족으로 일단 가까운 곳부터 쉽게 시작하는 방법을 택했다. 해안도시부터 내륙으로 예정을 해는데 방대한 지역의 여행은 많은 경비와 시간이 소모되므로, 직장에 매여있는 현실에 맞게 매년 1, 2차례 동북부부터 차근차근 내려오고 있다.


2007년 초여름 상하이에서 김ㅇㅇ님을 지인의 소개로 만났었다.

모 그룹사의 상하이지사장을 지내신 분인데,  회사를 사직하시고 상하이에서 개인사업을 하시면서 해박한 중국역사의 지식과 달변을 바탕으로 약 20년간 중국 여행온 분들의 가이드를 많이 해주셨다고 한다.

이 분 도움으로 중국 근대와 현대가 중첩된 상하이의 진수만을 즐길 수 있었고, 중국 정통 삭스핀(게살스프 아니고)을 제대로 맛보았다(처음 먹는 사람들은 비린 맛에 제대로 먹지 못했다). 

 

상하이에서 2시간 정도 고속도로를 질주하면 중국인들이 上有天堂, 下有蘇杭 (하늘엔 천당, 땅엔 소주, 항주)라고 부르는 소주(쑤저우)에 갈 수 있다. 요즘도 중국인들은 쑤저우에서 태어나 항저우에서 사는 것이 인간의 행복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뇐다고 하는데, 상하이 여행중에 동방명주에만 갈 수 는 없는 일이어서 쑤저우를 관광하면서 가이드를 맡아주신 김ㅇㅇ님의 적극 추천으로 중국 정원의 자존심으로서 피서산장, 유원, 이화원과 함께 중국 4대 명원 중 하나인 졸정원을 관람했다.


졸정원이라는 이름은 '한거부라는 시의 한 대목인 '졸자지위정'에서 따온 것으로서 '어리석은 자가 정치를 하고 있다'는 뜻으로 자신을 실각시킨 베이징 권세가들을 비꼬는 말이다. 졸정원은 일본 정원만큼 인위적이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의 편안한 스타일도 아니다. 

중국 정원의 3대 특징은 수목, 물, 암석이라고 한다. 졸정원은 이중에서 물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것이 특징으로서 정원의 절반이 호수로 이루어 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6월의 남부지방의 습한더위와 엄청난 수의 중국관광객들 속에서 정신도 없었지만 졸정원에서 감탄사를 남발하는 중국인들이 많이 보였다.


졸정원을 나와 한산사로 이동하면서 4대 명원으로 꼽히기에는 아니올시다라는 생각에 가장 중국다운 유적지를 물었을 때 가이드 김ㅇㅇ 님은 중국미의 정수를 보려면 천안문, 자금성, 만리장성이 아닌 이화원이라고 단언했다.

만리장성보다는 이화원이 중국을 대표하는 유적지라는 것이 의외였는데, 서태후가 애용했던 황실 별궁과 정원으로 알려져 있는 이화원을 그해 가을 중국출장중에 반나절의 시간을 활용해서 가 볼 수 있었다.

 

금나라 때인 12세기 초에 금나라의 행궁으로 처음 조성된 이화원은 엄밀히 본다면 만주족의 유적지이다. 

원나라 쿠빌라이 칸이 북경의 용수공급을 개선하기 위하여 곤명호를 확장하였고, 1750년 청나라 건륭제 때 대폭 확장되어 실질적인 청나라의 황실정원이 되면서 청의원으로 불렸다. 

2차 아편전쟁(1860년) 당시 프랑스와 영국이 약탈하고 파괴하였으나 이후 서태후가 실권을 쥐고 있던 1886년 재건되면서 이허위안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당시 서태후는 자신의 환갑 축하연을 베풀기 위하여 중국 해군 북양함대의 자금 은 30만냥을 유용해서 이화원을 재건하였고 그 때문에 청나라가 1894년 청·일전쟁에서 패배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과장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청나라 말기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주로 이곳에서 수렴청정을 했던 서태후는 일시적인 피서와 요양 목적으로 건설되었던 이허위안에 각종 전각과 사원을 추가해 본격적인 국사를 볼 수 있는 궁전 형태로 변모시켰다.

1990년 의화단의 난으로 이화원이 파괴되었으나 1902년 서태후에 의해서 다시 재건되었다.

 

이화원 입구에서 그 거대함에 놀랐는데, 총면적의 3/4를 차지하는 인공호수인 쿤밍호(昆明湖)는 인공으로 만들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광대한 크기여서 바다처럼 보인다. 항저우(杭州)에 있는 시호(西湖)을 모방하였다는데 시호보다 더 화려하다.

 

 

거대한 인공호수와 인공산, 아름다운 건물

 

청조의 패망하고 1924년 이화원은 공원으로 바뀌었다. 90년이 더 지난 후에 이화원 관광을 하게 되었지만 그 당시의 청조의 마지막과 서태후의 포스를 연상해보면서 화려한 중국미를 볼 수 있는 것은 이화원 여행의 맛이다.

하루 안에 다 볼 수 있을 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화원 입구에서 오른편으로 이화원 관광이 시작된다. 만수산(완셔우산(萬壽山))은 쿤밍호를 조성할 때 파낸 흙을 쌓아 만든 인공산인데 높이가 60m라고 한다.

건축물과 조형물의 화려함에 감탄을 하게 되지만 이 멋진 유적지가 서태후를 위한 그녀만의 공간이었다고 하니 유럽의 절대군주 루이 14세는 동양의 서태후를 누님으로 모셔야 할 것 같다.

만수산 정상에 있는 불당 즈후웨이하이(智慧海)에서는 이허위안 전체를 조망할 수 있고, 서태후가 정사를 보았다는 낙수당(런서우디엔, 樂壽堂), 서태후만을 위한 중국 최대의 경극극장이 있는 덕화원(더허위안(德和園)), 관세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는 파이윈디엔(排云殿) 등이 유명하다.

 

이화원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건축물은 창랑(長廊)이다. 길이 778m, 273칸으로 중국에서 가장 크고 긴 복도인 창랑은 중국 고전에 나오는 장면들을 묘사한 1만 4천여점의 회화가 천장과 벽에 그려져 있어 ‘중국 최대의 야외 미술관’으로 불린다.

 

베이징에 가면 가장 먼저 가보아야 하는 장소는 만리장성도 아니고 자금성도 아닌 이화원이다. 중국여행을 한다면 중국문화의 진수를 볼 수 있는 이화원에서 중국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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