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령, 용대리, 군축교, 신남



    양희은의 한계령(하덕규 작사/작곡)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80년대 말 까지도 군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에게 강원도 인제 그중에서도 원통은 기피지역 이었다. 오죽하면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 라는 유행어가 있기도 했는데, 기억을 돌이켜보면 인제보다는 신병들을 배를 태워서 소양호로 이동시켰던 양구의 2사단이 힘든 곳이었다. 


당시에 오지였던 원통은 이번에 44번 국도로 내려오면서 보니 오히려 인제읍보다 커 보였다. 원통 초입에 12사단 을지부대 사령부가 있었다. 12사단은 고 노무현대통령이 68년부터 34개월간 사병으로 군생활을 한 부대이다.  인제 신남에 있는 보급부대 경리였던 나는 부대 자금이나 사병봉급을 원통의 12사단 사령부에서 수령하는 사정으로 수시로 12사단에 출입했었는데 막상 이번에 보니 부대입구를 찾을 수 가 없었다. 우회도로가 생긴 탓도 있지만 지형지물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변해가는 가 보다.

 

우리부대는 38선 아래 신남면에 있었다. 44번 국도가 위병소 앞으로 지나가는 교통이 비교적 좋은 곳이었고 여름이면 설악산으로 강릉으로 가는 차들이 줄을 이어서 외롭지 않았다. 부대에서 인제까지는 차편으로 20분정도의 거리였는데, 부대에서 신남면소재지까지는 약 20분 정도 걸어다녔고, 신남면에서 인제읍까지는 지나가는 군용트럭을 얻어 타거나 시내버스로 가곤 했었다. 가끔은 인제에 미치기 전에 다른 곳으로 가는 군용 차량을 타면 인제까지 걸어가곤 했었다.

 

소양강 (구)군축교 아래는 항상 물이 차 있지는 않아서 평소에는 푸른 초원지대로 변한다. 그 초원에서 군부대들이 야영 훈련을 하곤 했는데 이등병때인 90년 초여름에 야외에서 훈련이라는 것을 해보면서 야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때 사진에 있는 김광락 대위는 지금은 대령으로 근무하고 있고 군수품 계약관련으로 연락이 된다.

그때 훈련중에 첫날 초원을 가로지르며 갑자기 나타난 노루가 수백명 군인들을 보고 놀라서 달아났었다. 모두 소리지르고 노루를 따라 달리던 그때 그사람들이 생각난다. 군축교밑은 최근에는 루어낚시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90년에는 설악산 백담사에 전두환씨 부부가 유배중이었다. 90년 가을에 인제로 면회를 오신 부모님하고 백담사에서 전씨부부하고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나는데 찾아보니 전씨부부하고 같이 찍은 사진이 남아있다.

90년 11월 초 소양강 군축교에서 대형버스추락사고가 일어났고,  당시 21명이 사망한 사고는 백담사에 유배중인 전두환씨 부부를 만나고 서울로 귀가하던 대구공고 재경후배부부들이 탄 관광버스가 군축교 아래로 추락하면서 발생했는데,  이 관광버스는 무자격 운전기사의 불법영업임이 밝혀졌고 피해를 당한 분들은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해서 관광버스의 불법운행 실태를 일대 정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고 다음날  인제읍에 있는 국민은행에 가면서,  군축교 사고를현장을 보려고  일부러 버스를 타지 않고 인제읍까지 걸어갔는데 군축교 오른 편에 빠져있는 버스를 볼 수 있었다. 시신은 이미 수습해서 보이지 않았고 버스는 물에 대부분 잠겨있었는데 유실물이 없도록 그물로 버스주변을 감싸놓았었다. 물이 너무 맑고 진한색이서 지금도 기억이 난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빈다. 

44번 국도를 타고 운전하면서 차창 밖으로 내가 가장 젊음이 넘쳤던 시절에 군 생활을 한 작은 부대를 다시 보니 옛 기억이 난다.



양양에는 낙산사가 있다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직장에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을 경험할 때면 일상을 탈출하고 싶어진다. 

그 상식에 반하는 일이 직원들간의 갈등이고 잘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욕심이면 다 덮고 사라지고 싶다. 

며칠간 동료들의 이기적 행동을 보면서 높아진 실망감을 피하려고 휴가를 내고 대전공무원연합의 강원도 여행겸 워크숍에 동참했다.


대전에서 가장 먼 곳은 제주도인데 접근이 어려운 여건상 이번 여행은 내륙에서 가장 원거리인 강원도 그것도 양양이나 고성이니 마음을 다스리기에는 적합한 여행지이다. 


90~92년 강원도 인제에서 군생활을 했던 기억도 새록새록 올라오고 옛 기억을 되집어 보는 추억의 여행..   


차를 렌트했는데 청사까지 배달을 해준다. 8명이 탑승하고 고속도로로 4시간 정도 이동하여 비교적 쉽게 낙산사에 도착했다. 86년 3월 대덕고 수학여행때 처음 왔는데, 당시는 대전에 남녀공학 고등학교가 많지 않던 시절이어서 남녀 학생들이 함께 가는 수학여행이 드물었고 재미도 있었다. 그래서 인지 4개반 약 230명이 어울렸던 추운 3월의 수학여행은 추워도 춥지 않았다. 







              ▲ 동해는 물이 맑고 차다. 서해에서의 바다는 흙탕물과 갯벌인데 이 곳은 바위와 모래 그리고 철조망. 



              ▲ 홍련암






화강암 구조물은 가장 한국적이다. 이 난간 구조물은 낙산사와 어울리지 않아서 자세히 보니 모서리를 V컷 가공처리 했다.  

도로경계석도 V컷은 중국수입품에서만 나타나는데 이런 문화공간은 인간의 혼이 담겨있는 자연스러움이 필요하고 이런 주변구조물도 세세한 신경을 기울여서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든다.



              ▲ 멀리 보이는 풍경은 쏠비치


              ▲ 2005년 산불로 유실되었다가 복원된 원통보전


인제에서 군복무하던 90년 가을에 부모님이 면회를 오셨을 때, 백담사와 낙산사를 구경했었다. 당시 백담사에는 전두환 이순자 부부가 유배중이었고, 이들 부부를 보기 위하여 전국의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들었고 나도 얼떨결에 비닐하우스안에서 애국하자는 강연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2005년 강원지방의 대화재로 낙산사가 거의 전소되는 피해가 있었다. 화마의 피해는 엄청난 문화재의 손실이 있었고 몇년 후 에 토인회회원들하고 낙산사를 방문했을 때 아직 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었는데 이번에 방문해보니 거의 복구가 되었고 아늑함도 느낄 수 있었다. 









              ▲ 관음지와 보타각, 보타전


우리나라 최고의 건축가이신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신 절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유명 고찰에는 의상대사께사 창건했다는 기록을 적어 놓았는데 의상대사는 노래하는 스님보다 더 바쁘셨겠다. 많은 사찰들이 신라시대를 기원으로 하여 고승들이 창건한 역사를 내세우고 있지만 현실을 벗어난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낙산사는 신라시대를 기원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빼어난 풍광과 아름다움을 가진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을 다스리고 가족애를 느끼기에는 최고의 장소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