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비 성 '

대전청사공무원연합(대공연)에서 2013년 사업계획 수립을 위한 워크샵장소로 우리가 삼국시대로 알고있는 기원전부터 약 700년 까지의 우리 역사의 한 축이었던 백제의 마직막 수도 사비성(부여)을 찾았다. 

90년대 이후 세계질서가 신자유주의의 소유물이 된 이후, 승자독식이 당연한 질서이자 자본주의의 진리로 받아들여 지던 것이 오래된 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자본보다 더 강한 승자독식의 룰이 적용되는 영역이 역사라고 할 수 있고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 만의 현상은 아니다. 역사의 승자가 자기중심적으로 만들어 놓은 자의적이고 만용적인 신라중심의 역사관이 이어지면서 백제하면 떠오르는 삼천궁녀만 남기고 우리 기억속에서 사라져버렸고(삼천궁녀라니 얼마나 악의적인 외곡인가!), 당시에 신라에서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고구려는 분단 후에 잊혀진 나라가 되었다.

요즘 TV 역사물이 과거 조선왕조의 멜로적 드라마 구성에서 고구려나 북방의 강인한 전투와 정벌을 다루는 것으로 변한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는 차치하고서라도 신라중심의 남쪽에 국한된 역사와 과거 우리가 만주 벌판을 내달렸던 유목민족의 후예라는 역사적 사실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이 많아져서 시청률을 높일 수 있고 광고도 많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경주에 있는 문화재를 둘러보며 상당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상당한 유물들은 흔히 통일신라시대라고 부르는 시대의 작품들이다. 과거 신라와는 비교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뛰어난 미술품이 옛 백제땅에서 발견될 때마다 백제의 미학을 논하지 않아도 백제멸망 후 상당한 문화적 유산과 자산이 신라로 전이되었음을 예상할 수 있다.

요즘도 이어지고 있는 '백제'에 대한 의도적 무시가 신라를 상대적으로 빛내주는 것은 분명 아니다. 통일신라(고구려는 어디로), 호국불교(인명을 살상하는), 화랑 등등으로 위장되어 버린 스스로 역사를 퇴보시키는 자학적 역사는 이제는 멈춰야 한다. 

수도권이 삼국시대에 백제의 땅이었고 몽촌토성, 풍납토성이 백제의 성이었다. 서울을 근거지로 나라를 건국한 백제가 가장 강성한 시기는 한강 유역에서 세력을 떨칠 때였고 백제의 수도는 백제역사의 대부분 서울이었고 세력이 약해지면서 웅진, 사비로 이어진 것이다. 결국 백제는 충청도나 전라도가 주축인 나라가 아닌 것이다. 영화흥행을 위하여 전라도 사투리로 버무린 짝퉁 백제의 모습이 대중에게 각인되었지만 백제는 한강유역을 가장 먼저 차지한 나라이자 중국, 일본과 교료가 활발했던 국제적인 나라가 아니었던가! 지금의 서울 사람들은 자기들의 뿌리가 되는 나라를 유추해 본다면 백제...

우리가 중국과 국교를 수립한 후에 많은 사람들이 백두산을 포함한 동만주땅을 방문하였다. 당시 돈 몇푼 들고 중국을 찾았던 분들이 '조상들의 땅을 되찾자고 하며 플랭카드들고 사진찍고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보도하고는 했는데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요즘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역풍을 맞고 있는 윈인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중국의 동북공정은 우리나라의 극우언론에서 중국이 우리나라를 삼키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과장되게 보도하여 많은 사람들이 실제보다 침소봉대한 면도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 현지에서 현실을 무시한 감정적인 대응과 무지한 역사관 그리고 소영웅주의는 결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현명한 판단력이 필요하다. 만약 일본 극우주의자들이 서울 광화문 구 총독부자리에서 일제강점기를 근거로 잃어버린 땅을 다시 찾아야 한다고 플랭카드 걸로 시위를 하거나 기념행사를 하면 우리가 용인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 아닌가!

현실적으로 고구려 역사에 대한 접근이 상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으므로 백제에 대한 역사적 가치를 찾고 높이는 길은 국제적인 교류가 있었고 일본문화의 선지자적 역활을 한 백제에 대한 역사적 자긍심을 높일 수 있고 삼국의 교류에도 중요한 매개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문화국가 백제

우리가 느끼는 백제에 대한 잔상은 강한 국력으로 힘을 과시한 나라이기 보다는 문화적 우월성, 석탑, 향로, 칠지도, 불교, 일본과의 교류 등 문화적 색채가 강한 나라인데, 당과 야합하여 고구려를 잃어버리고 남쪽만을 차지한 신라의 방조속에 3천 궁녀라는 터무니 없는 날조극을 덮어쓴 의자왕을 마지막으로 역사속에서 내려온 아쉬움이 있다.

충청남도에서 약 20년째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 백제역사문화단지의 조성이다. 잊혀지고 무시되던 백제에 대한 체계적이고 역사적인 접근을 하고 있는 사업으로 백제역사문화단지는 총 100만평 규모를 자랑한다. 현재 역사단지중 사비성은 약 12만평이라고 하는데 지방자치단체에서 장기간(90년대 초부터 시작) 추진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반드시 좋은 결실을 거두어 백제의 아름다움과 역사의 중요함을 알려주어야 한다.


 ▲ 2013년 2월 초에 방문한 사비성이다. 충청남도의 도움으로 문화해설사의 해설서비스를 받았다. 사전신청하면 ㄴ구나 좋은 해설을 들을 수 있다. 


 ▲ 사비성내로 들어오면 천정문이 보인다. 지금의 청와대가 되겠다. 지붕 가장 윗쪽 양 끝단의 치미가 인상적이다. 20년전에 일본 나라시에 있는 동대사(도다이지)에서 비슷한 모습의 치미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일본의 나라시는 우리나라 백제와 유사한 곳이다. 두 도시가 교류한다면 백제를 매개체로 한 좋은 상품겸 상생과 협력이 가능할 것 같다. 


 ▲ 백제왕이 사용하던 집무실 의자를 재현해 놓았다. 나무의자라서 허리건강에는 좋겠다. 뒤에 보이는 금색 봉황은 위엄이 보이지 않고 치킨집이 연상된다. 


 백제왕 부부의 복식을 고증해 놓았다. 왕족이나 귀족은 실크로 만든 의복을 입을 수 있었지만 가장 대중적인 의복재료인 면직물은 고려 말에 도입되었으니 당시에 가난한 백성들은 얼마나 춥고 궁핍했을까. 이분들이 이어온 역사가 지금의 대한민국. 


 ▲ 왕궁사찰인 능사를 재현했다. 사비성내의 가장 인상적인 건축물이다. 전통적인 백제양식의 사찰은 목탑 1개, 대웅전 1개라고 한다.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능사(사찰)를 재연해 놓았다.목탑 1개와 대웅전 1개  전통적인 백제양식이라고 한다.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철학의 부재가 종교적 복종을 불렀고 불교를 통한 생과 사의 위탁은 길지 않은 생애를 살았던 사람들의 안식처였을 것이다.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현대 기복신앙의 종교와 비교해보면 솔직함이 있다 그리고 아름답다. 


대웅전이 화려하지 않다. 뼈가 앙상했던 싯달타가 화려한 대웅전을 좋아하지 않으실 거다. 예수님도 여호와도 정체불명의 첨탑과 네온사인 십자가가 없으면 교회가 될 수 없는 교회건물을 좋아하지 않으실 거다. 싯달타는 제자들에게 잔소리가 많으셨다고 한다. 자신의 가르침을 완전히 수용하지 못하는 제자들에 대한 못미더움과 대중에 대한 가르침을 위하여 불경이 남게 되고 현대 불교는 철학적 기반을 가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너무 웅장하여 신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기 보다는 거부감을 주는 사찰는 다르다. 이곳 능사의 대웅전은 세월의 깊이는 없지만 단순하고 소박하여 백제다운 맛이 있다.




 KBS 한국재발견 프로그램에서 사비성과 능사를 소개했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두려움 그리고 죽음에 대한 철학의 부재가 종교적 복종과 경외심을 가져왔고 불교를 통한 생사의 위탁은 길지 않은 삶을 살았던 당시 사람들의 안식처였을 것이다. 물질의 부를 신의 축복으로 몰고가는 현대 기복신앙 종교와 비교해보면 솔직하고 순수하다. 그리고 아름답다.  


 ▲ 아파트를 벗아나 살게 되면 작은 종을 달아보고 싶다. 바람이 치미면 울리는 소리는 아름답겠지... 


 ▲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이 따뜻해진 작품이었다. 금칠을 해 놓은 불상이 아니다. 부처가 잘생기지도 않았다. 화려한 단청도 아니다. 부처님이 헬레니즘 부처(고수머리)도 아니다. 소나무를 깍아서 만든 나무결이 보이는 이 소박한 불상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도시로 진출한 절이나 포교원에 이런 불상을 도입한다면 대중에게 더욱 다가갈 수 있겠다. 


 ▲ 능사에서 독경을 하고 계시는 자원봉사자 어르신이시다. 능사에는 스님이 없지만 종교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승려가 없는 사찰이 종교적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 도 있지만, 왜 사찰에는 승려가 있어야 하고 교회에는 목사가 있어야 할까?  


백제시대 귀족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한명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서 부장품도 없다고 한다. 순장이라는 폭압적인 제도로 많은 사람이 같이 묻히던 시대인데 소박하게 만들었다. 강자가 죽어서도 사후세계에서 강자가 되는 것이 당연시 되던 시대이다.



한강에 있던 위례성을 재연하였다. 나무 목책으로 성을 둘러쌓았다 읍성에 온 느낌이다


 벡제 귀족들의 집을 복원했다.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에도 초가집이 많았는데 당시에 기와집은 권력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겠다. 




롯데와 백제

충청남도에서 주관하는 사업이지만 민간자본을 유치하는 방식을 택했다. 한때 공공건축물을 신개축할때 민간자본 유치가 단체장의 경영 능력인 것처럼 호도되던 시절에 이루어지기도 했고 살림이 팍팍한 충청남도의 고육지책 일 수 도 있지만 대기업이 각종 특혜를 받아가며 참여하는 민자사업추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한 지금에서 보면 비극이다.

호텔, 수영장, 골프장, 아울렛(부여 인구가 몇명인데)을 롯데에서 추진하고 있고 일부는 완성되어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 백제에 대한 문화적 이해가 부족하고 이익이 선이 되는 대기업의 사업참여가 궁극적으로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지 아직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자본의 도입이 마치 사업의 성공인 것처럼 인식하는 천박한 문화의식 수준이 불러온 참극이고 결국 백제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적 가치와 공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기에 걱정스럼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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