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버킨


에르메스(HERMES), 최고의 명품 브랜드이다. 

루이뷔통을 기저귀 가방으로 사용하는 여성들이 가지고 싶어 한다는 버킨백은 영국출신의 프랑스 샹송가수 제인 버킨으로 인해서 탄생되었다. 

60년대 유럽문화의 아이콘, 제인 버킨(Jane Birkin)은 1946년생이고 마마 '주디 캠밸'은 영화배우였다. 세번의 결혼과 아빠가 다른 세딸의 엄마인 버킨은 영국출신이지만 주로 프랑스에서 활약한 프렌치 샹송가수 겸 영화배우였다. 시인이기도 하고.. 


                                  ▲ 주디 켐벨(Judy Campbell)


                                 ▲ 제인 버킨(Jane Birkin)

 


첫 남편 - Jonh Barry


제인 버킨은 17세에 배우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영국에서 첫 영화에 출연하였다. 그녀는 1965년 훗날 영화음악의 거장이 되는 젊은 존 배리(John Barry)가 제작한 뮤지컬 'Passion Flower Hotel'에 출연했고 그들은 급격히 가까워지고 버킨이 19세에 결혼을 하였는데, 존 배리는 007의 작곡가이며 아카데미와 그레미상을 수상한 훗날 영화음악의 대가가 되었다. 여자의 운명은 첫남자가 좌우한다는 속설이 있는데 버킨의 첫남편부터 평범하지 않다. 제인은 첫딸인 Kate Barry를 낳고 다음해에 이혼했다. 


                                  ▲ 제인 버킨과 존베리 부부의 결혼시절 


                             ▲ 영화음악계의 거장이 된 존 베리의 말년사진이다. 


                                   ▲ 제인 버킨과 큰 딸 케이트의 어린시절 


                             ▲ 제인 버킨과 큰 딸 케이트의 최근 사진 



두번째 - 세르쥬 갱스부르(Serge Gainsbourg) 


갱스부르, 갱단 보스는 아니다

프랑스의 천재 대중음악가, 배우이자 연출가이며 버킨의 영원한 남자인 갱스부르 사진을 보면 코가 크고 휘어진 전형적인 유대인이다. 러시아출신인 갱스부르의 부모가 러시아혁명 시기에 프랑스로 이주하여 정착하였고 본명은 뤼시앵 긴스버그(Lucien Ginsburg)이다. 

세르게이(Sergei)에서 세르쥬를 차용하였고 영국화가 토마스 게인즈버러(Thomas Gainsborough) 에서 갱스부르를 차용했는데 클래식한 이미지의 영어 게이즈버러가 프랑스로 넘어가면서 갱스부르가 되었다고 한다. 


평범할 수 없는 갱스부르는 영화배우 겸 가수로 활동하면서 프랑스 샹송에 대중음악을 접목하여 프랑스 대중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아티스트이다. 그는 우리나라와는 멍멍탕으로 악연인 프랑스 여배우겸 가수인 브릿짓 바르도의 연인이었고 그녀를 위하여 많은 노래를 만들어 주었으나 외설적인 가사에 대한 악영향을 두려워한 브릿짓 바르도가 그 유명한 노래인 ‘Je t’aime moi non plus’의 취입을 거절하자 결별하게 되었다



                                        ▲ 브리짓 바르도와 갱스부르 




                                        ▲ 브리짓 바르도와 갱스부르 


예술과 사랑은 열정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영화 'Slogan'에서 그녀를 만나 세르쥬는 그녀에게서 음악적재능과 매력을 발견했다. 즉 당시 영화계에 활약하는 여배우들은 볼륨이 있는 글래머스타일이었으나 제이 버킨은 깡마른 체형이어서 패셔니스타일수는 있어도 스타여배우로 활약이 어려운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제인의 음악에 대한 재능을 알아차린 세르쥬는 그녀에게 샹송을 부를 것을 권했으며 그녀를 위하여 바르도가 포기한 노래를 주었고 갸냘프고 불안한 음색의 제인 버킨은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하며 대스타가 된 것이다. 결국 샹송계의 플레이보이인 갱스부르의 구애와 예술적 결합으로 두 사람은 (비공식)부부가 되었다.







                                        ▲ 제인버킨, 갱스부르, 큰 딸 케이트, 샤를로뜨 (1977) 


불어를 모르니 뜻은 이해되지 않지만 노래를 들어보면 신음소리도 나오고 끈적끈적한 느낌을 주면서 중독성이 있다. 두 사람은 예술적 동반자라는 표현이 어울리지만 제인버킨이 갱스부르를 만난 것은 분명히 행운이었다. 

갱스부르가 있었기에 영국인이어서 불어발음이 익숙하지 않은 그녀가 갱스부르의 명곡을 부르는 샹송가수로 성공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퇴물이 되어버린 브릿짓 바르도, 그리고 70을 앞둔 나이에도 세르쥬 갱스부르의 이름을 걸고 월드투어를 하고 있는 명가수 버킨, 누가 더 행복한 사람일까! 

그녀의 재능을 음악과 영화의 영역에서 꽃피워준 갱스부르는 잦은 기행과 알콜의존으로 재인 버킨과 갈등을 겪다가 82년 그녀와 헤어졌지만 83년 제인에게 신곡을 주며 음악적 재결합을 하였다. 당시의 명반이 브람스의 3번 교향곡 3악장을 편곡한 Baby Alone In Babylon이다.  역설적으로 보면 영국인인 제인 버킨이 프렌치 팝(샹송)을 대표하는 위치에 오른 것이다. 알콜중독과 심장병을 앓고 있던 갱스부르는 결국 심장마비로 91년 사망했다. 


마지막이다 - 쟈크 드와이옹(Jacques Doillon)


영화감독인 쟈크 드와이옹(Jacques Doillon)은 버킨의 세번째 남자이다. 2003년 부산국제영화제에 방문하기도 하였던 쟈크 드와이옹은 우리나라도 보면 이창동 감독 같은 사람인 것 같다. 그들은 1982년 루 드와이옹(Lou Doillon)을 낳았다. 루는 패션디자이너, 모델, 패셔니스타, 배우, 가수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 루 드와이옹(Lou Doillon)





월드투어 


제인버킨은 라이브공연에 주력하여 월드투어를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2004년, 2012년, 그리고 2013년 4월 공연까지 3번 내한 공연을 하였고, 공연관람기를 보면 극찬이 이어지고 있다. 근사하게 나이가 들어가는 뷰티풀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는 아름답다.




샤를로뜨 갱스부르(Charlotte Gainbourg) 


제인 버킨과 갱스부르 사이에 낳은 딸이 2006년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사를로뜨 갱스부르이다. 샤를로뜨는 불편한 아빠의 외모와 엄마의 우월한 몸매를 이어받는데, 자신만의 개성있는 외모로 승화시키고 자신감 있는 패션에 대한 감각으로 영화뿐만 아닌 패션계에서도 탑클라스의 배우 겸 싱어송라이터, 패셔니스타로 활동하고 있다. 부모의 명성에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명성을 쌓아가는 이 배우 역시 아름답다. 











버킨백 


일년에 100개 정도 생산량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는 버킨백은 1984년 에르메스의 회장이었던 장 루이 뒤마 에르메스가 비행기에서 동석하게 된 제인 버킨의 가방안에 자신과 샤를로트의 양육을 위한 물건이 엉망진창으로 넣어져 있는 것을 보고 포켓이 부착되고 많은 물건을 정리하여 넣을 수 있는 가방을 만들기로 제안하여 탄생한 가방이라고 한다. 지금은 켈리백과 함께 에르메스를 대표하는 백으로서 베컴의 부인인 빅토리아는 100개가 넘는 가방을 가지고 있다고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제인 버킨은 최근 인터뷰에서 마지막 가지고 있던 버킨백은 도난을 당하고 더이상은 버킨백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